먹고 사는 문제나 다른 일상의 대소사가 사람의 머리를 옥죌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요즘 내 상태가 말이 아니다. 책은 도망치듯 마구잡이로 읽고 있지만 뭔가 안정된 마음으로 정갈한 의식이 아닌 흡사 걸신이라도 들린 듯, 되는 대로 마구 음식을 입에 쳐넣는 듯한 모습이다.  덕분에 글을 남길 정신적인 여유도 많이 부족했는데, 어쩌면 요 근래들어 늘어난 술이 아닌가 싶다. 운동은 여전히 꾸준하게 하고 있지만 맥주를 자주 마시다보니 좋아진 먹성과 늘어난 위에 몸이 무겁게 느껴지고 정신은 함께 둔중해지는 기분이다.  얼마 전 들어보니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24시간의 단식이 줄기세포를 재생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니, 나도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하루씩 단식을 해볼 생각이다.  일차로 위를 줄이는 효과가 있겠고 몸과 마음을 청소하는 의미도 있다.  다만 근육운동을 할 경우엔 운동 후 단백질과 전해질이 공급되어야 하므로 이에 맞는 수준의 쉐이크 정도는 마실 생각이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게 3대가 이어서 경영하고 있는 속초의 대형서점이자 독립서점의 3대 오너의 책.  대학과 취업까지 9년간 이어진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인 속초로 내려가게 된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도 대단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한 건 아버지와 함께 일하면서 느끼고 배워가는 것들이 아닌가 싶다.  가족이고 부모이며 노인인 아버지와 함께 주도적으로 일을 하면서도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하려면 무척 깊은 이해와 배려, 그리고 존중이 필요한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곳곳에 남겨진 충돌와 후회, 이해하려는 몸부림이 남의 얘기같지 않다. 보통 강원도를 고향이라고 하거나 춘천 또는 원주를 고향으로 하는 사람은 간혹 봤어도 속초를 고향이라고 하는 사람은 저자가 처음이다.  설악산여행의 일부로 잡고 회를 먹거나 수산시장에 가기 위해 잠깐 지나치는 곳으로만 기억에 남은 속초가 덕분에 언젠가는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았다.  회도 먹고, 소주도 한잔 마시고, 책도 사고 서점도 구경하고 싶다.  서점은 그저 서점인데 그 서점에 역사와 이야기를 부여하는 건 사람이다.  요즘처럼 개인이 뭔가 소규모로 일을 해서 먹고 사는 것이 힘겨운 시대에 눈여겨 볼 부분이 아닌가 싶다.  우리 회사도 뭔가 차별화된 스토리텔링과 캐릭터부여가 가능할까?


일신교가 세상을 점령한지도 어언 2000년, 유대교에서 파생된 카톨릭, 여기서 분파한 셀 수 없이 많은 개신교분파, 그리고 이슬람까지 다신교와 다신교 이전의 애니미즘은 적어도 종교라는 태두리에서는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과거의 존재로써 신화와 소설속에서만 살아 있다. 덕분에 이런 유형의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지만. 


신이 먼저인지 믿음이 먼저인지는 닭과 달걀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일단 조금 더 현대적인 접근은 이 둘을 상호보완적인 개념으로 놓고 와리가리를 한다. 이 소설에서는 신이란 믿음 속에서 태어난 존재로 설정하였고 이 믿음의 유무에 따라 느껴지고 강해지는 신성이라는 개념으로 유쾌한 이야기를 펼친다.  유일신보다 훨씬 더 사람들 사이에서 친근하게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던 고대의 신들은 이런 책을 읽다 보면 특히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마법판타지에서는 대부분의 신격이 그대로 존재하되 사람들의 믿음이나 망각에 따라 현재하거나 정신세계의 먼 곳에서 유배되어 있는 것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양한 플롯과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일단 이런 다신교의 시스템의 신들은 모두 우리와 가까운 모습을 하고 지근거리에서 우리 일에 끼어드는 우리 모습의 투영 그 자체라고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종종 미개하게 취급되는 일본의 다신교, 신도로 통일되었지만 뭔가 내니미즘을 연상시키는 듯한 관습적인 신앙이 나빠보이지만은 않는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자면 유쾌한 상상을 맘껏 지어내게 하는 이야기. 내 앞에 이렇게 옛 시대의 누군가가 현신하면 꽤나 특별한 경험일 듯 싶다.


비슷한 테마로 요런 소설들도 괜찮게 봤다.




























빅히스토리와 사회인문, 혹은 과학으로도 분류할 수 있어 서점주인을 괴롭히는 '사피엔스'의 재독.  역시 처음보다 이해도 빠르고 쉽게 전개를 따라갈 수 있었다. 책은 가능하면 여러 번 읽는 것이 좋다고 결론지어진다.  소설도 그렇고 고전을 읽을 때도 그렇지만 나에겐 늘 어려운 경제서적이나 과학분야의 책들은 한번엔 속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것 같다.  시간을 탓하거나 못 읽은 책의 핑계를 대지 말고 이해할 때까지 읽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추린 '사피엔스'의 교훈은 우연과 필요에 따라 우리의 많은 것들이 결정되었다는 것. 


우리에겐 까마득한 고대의 인물들이고 저자에게도 짧게는 몇 백년에서 천년 이상의 과거의 인물들을 정리하고 로마와 그리스로 일차 나눈 후 다시 인물의 업적, 지향, 드라마성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비교되는 인물을 match up한 구성이 돋보인다. 이제 겨우 8권까지 왔으니 이 방대한 책도 두 권을 더 읽으면 모두 끝이다. 동서문화사의 판본은 두꺼운 세 권으로 2000페이지가 넘는 것 같은데 그쪽은 문체와 번역의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중역이 많은 출판사라서 굳이 구해볼 것 같지는 않고 비교를 하려면 천병희선생의 완역본을 읽으면 좋겠다. 


제목만 보고 '고투 40년'을 '고군분투 40년'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가 막상 책을 보니 '고투'는 이극로선생의 호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뭔가를 조금씩 배우고 느끼는 것이 삶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이극로선생은 독립운동가의 모습과 함께 민족주의에 기반한 근대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는 것 같다. 그가 만주에서 공부하고 유럽으로 가서 신문물을 공부하고 견학하며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일본을 통해 식민지조선으로 돌아온 여정을 보면 슈테판 츠바이크가 훗날 그리워한 국경없는 유럽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그 어려운 시기에 돈도 없이 어찌 그런 학업과 견학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일찍부터 통합된 국문시스템의 필요를 많이 겪고 결국엔 그 방향으로 집중한 끝에 옥살이까지 하면서 한국어의 정리와 시스템정리에 힘썼음에도 불구하고 북에 남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분이다.  이념에 따라 남에서, 북에서, 종종은 남북 모두에게서 배척당한 선각자와 독립유공지사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국가의 이념을 바로 잡고 정치, 법률, 경제, 교육 등 한국 곳곳에 기생하고 있는 현대판 친일파들을 솎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추리소설은 어린 시절에 대한 부채 혹은 그때의 결핍을 지금와서 채우는 것처럼 이렇게 꾸준히 읽고 있다. 사무실을 차리고 구해 읽기 시작한 추리소설이 아마도 권수로만 대충 200권은 넘을 것이니 나름 이쪽 장르도 꽤나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된다만, 역시 본격적인 추리에는 재주가 없다. 그저 활극처럼 멀리 떨어져서 이야기의 전개를 즐길 뿐이다.  연상추리도 어렵고, critical한 reading실력도 많이 딸리는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곧 건물에 붙어 있는 작은 fitness에 가서 좀 뛰고 들어갈 생각이다.  배를 줄이는 건 음식조절이지만 어쨌든 칼로리소모도 필요하니까.  그래도 목표량을 채웠기에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정리할 수 있겠다.  지금의 어려움은 그저 견뎌내고 버티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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