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트리스 - Rest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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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두려워하는 죽음. 그런 죽음을 이렇게 잔잔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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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마인드
리처드 왓슨 지음, 이진원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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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잡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언론과 발빠른 네티즌들은 그 소식을 여기저기 전했다. 소식을 접한 세계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며 애도했다. 초등학교시절 애플 II를 가지고 놀던 때부터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았고, 컴퓨터에 빠져 살았던 그 시절에 동경의 대상이자 우상이었던 그의 죽음 소식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충격이었다. 그런데 내가 삐딱해서 그런지 몰라도 스티브 잡스에 대한 언론과 시민들의 반응이 너무 과잉적이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친하지는 않고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의 죽음에 애도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도리이지만, 한 기업의 CEO의 죽음에 대한 반응으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낸 제품들이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고, 그가 만들어낸 혁신이 우리의 삶을 진보 시킨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인류애적 헌신을 발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헌신했던 사람도 아닐 뿐더러, 더더욱 그는 인류의 문명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학자도 아니지 않던가?

 

생각해 보면 그의 혁신이라는 것도 기업적 관점과 경제적 관점에서 발현된 것일 뿐 아니라, 지금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기기들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는 fun과 편의성의 결합한 오락도구라고 생각한다. 물론 제대로 활용해 자신의 업무나 실생활에서 기대 이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기 Wii를 만들어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MS Xbox를 밀어내고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가 되었던 닌텐도가 스마트 폰과 테블릿 pc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침체기로 빠져든 것을 보면 지금 소비자들의 소비형태에 fun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잡스가 만들어낸 애플의 제품들은 분명 fun이상의 혁신적인 기능들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소비자들은 혁신보다는fun을 더 추구했고, 잡스 또한 fun을 자신의 혁신적인 제품에 담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스티브 잡스에 대한 열광은 현대 소비 만능 시대가 만들어낸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fun을 소비하기를 바라는 소비자의 욕망을 잘 이용하는 기업들이 만들어낸 판타지적 세계에서 현대인들은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물질과 돈의 가치가 최고가 되고, 정작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는 현대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다양한 정의와 가치는 무시하고, 스스로를 단순히 소비자라는 가치에 고정 시켜 버린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를 지극히 논리적이며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업의 마케팅이나 상술에 쉽게 놀아나지 않는다고 착각한다. 소비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사회 변화가 그런 착각을 더 강화 시킨다. 실제로는 그들의 소비 행태를 냉정하게 분석하면 똑똑한 소비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소비 세계에서 만들어진 스스로가 이성적이면서 똑똑하다는 착각이 현실의 사회문제에서도 작동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제주도 강정마을 사태를 두고 해군과 충돌한 강정마을 사람들에 관한 한 기사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왔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대한 찬반은 생각과 가치관이 다를 수 있기에 단순히 찬반 논쟁으로 댓글들이 흘렀다면 개인적으로 화가 안 났을텐데, 댓글의 시작부터 어이가 없게 흘러 갔다. 해군이 쳐 놓은 철책을 넘어온 강정마을 사람과 활동가들에게 대해서 "총살이나 사살해도 할 말이 없다."라는 어이 없는 댓글들이 뒤에 숫자를 붙여가면서 줄줄이 달려있었다. 이게 뭐가 어이없는 댓글이냐고 생각한다면 당신도 생각이 없고 상식이 없는 사람이다. 강정마을 사태에 대해서 전혀 모르더라도 말이다. 그 커뮤니티가 그냥 네티즌들이 장난이나 치는 사이트였으면 실망감이 덜 했을텐데.. 나름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점잖은 척 하면서 예의라는 것을 지키는 사이트였기에 더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나서 "웃음 밖에 안 나오는 어이없는 댓글들"이라고 한 마디 했더니, 구성원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댓글이라는 공격이 들어온다. 인류 보편적 상식은 비무장한 민간인에게 어떠한 경우에라도 총격을 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시민에게 군인이 총격을 가해도 할 말이 없다라는 댓글을 당당하게 달면서 예의나 예절을 찾는다.

 

문득 진중권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이 독설을 퍼부으면 논리적으로 따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단지 자신의 말하는 태도에 문제를 삼는다고... 그래도 진중권은 논리가 통하는 상대와 논쟁을 벌였기에 그런 반응이 나왔겠지만, 기본적인 상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슨 논리로 말해야 할까? 내 댓글에 예의를 찾고 논리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웃음이 났다. 상식도 없으면서 예의와 논리를 찾는데.... 무슨 논리로 상식을 설명할 것인가?있는 척하고 잘난 척하면서 형식적인 논리를 따지는지 몰라도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생각이 없고 상식이 논리를 대체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이것을 단순히 소비 시대에 가치 상실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나라 군대가 만들어낸 폐혜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도 군대는 갔다왔는데...... 정확한 원인이야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논리라는 것이 상식을 뛰어넘고, 보편적 가치를 뛰어넘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 논리라는 것도 어떤 가치나 진리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형식적인 논리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사실 군 철책을 넘어온 침입자에 대해서는 사살해도 좋다는 규정이 존재하는 현실은 그런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의 형식 논리는 맞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기본 상식과 보편적 가치를 무시한 형식 논리는 지극히 폭력적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총살이나 사살해도 할 말이 없다."라는 댓글을 함부로 다는 사람들을 통해서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는가.

 

그 일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이 계속 더 해가는데, 이 책의 내용이 그 일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을 주는 것 같았다.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해 가는 현대인들의 문제점과 원인을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창의적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는 창의적 생각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제시하면서 기업 경영이나 혁신의 관점이 들어가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면에서는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IT 문화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런 비판과 논리가 공감이 가는 것은 이 책의 저자처럼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해도 추상적으로나마 알고 있던 것들이기에 그렇다. 저자의 이런 성찰이나 문제인식은 이미 "생각의 탄생"이나"집중력의 탄생"이라는 책과 연관해서 생각할 여지가 많다. 황농문 교수는 "몰입"이라는 자신의 책을 통해서 "천천히 생각하기"라는 화두를 던지고 그 힘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 만큼 우리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즐겁게 이용하면서 생각하는 능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과 다른 여러 책들은 형식 논리에 치중해 다른 가치를 빼먹고 자신의 생각을 짧은 댓글로 즉자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행위를 설명하는데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그들은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단순한 형식적인 논리로 빠르게 응답했을 뿐이다. 그들은 빠르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속도 경쟁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잘 적응된 모습을 보여준 것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가치를 망각하고 즉자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할 뿐이다.

 

우리는 수 많은 정보의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면서 수 많은 정보를 손 쉽게 접한다. 1960년대와 비교해 2008년 사람들은 300배 이상의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하니 엄청나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그런 정보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이며,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런 정보들을 취합해서 지식과 지혜를 넓혀가고 있는가? 단지 정보마저도 fun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저 소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은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종국에는 인터넷이 우리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보통 시간이 가면 지식이 늘어난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인터넷이 지식을 확장시킨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현재 너무 쉽게 공동 생산과 배포가 가능한, 방대한 양의 디저털 쓰레기와 혼란이 학습과 지혜를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무지가 확대될 수 있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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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이후의 세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구글 이후의 세계 -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낼 인터넷의 미래
제프리 스티벨 지음, 이영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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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예측한 책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이다. 레이 커즈와일은 과학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고 말하며, 어떤 지점에서는 그 속도가 엄청나다고 주장한다. 그 지점이 특이점이라고 말한다. 그 책에서 아직도 기업에 남는 것은 2050년 쯤 되면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가 결합할 것이라고 한 부분이다. 지금은 스마트폰이라는 놈으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이 가능한 세상이라면, 그때가 되면 뇌 속의 컴퓨터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이 가능한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 오면 어쩌면 우리는 공부라는 것을 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소설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수면 학습 장치 같은 것 조차 필요가 없다. 뇌 속의 컴퓨터로 학습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세상이 꼭 유토피아인 것만 같다.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보면 뇌와 컴퓨터가 결합한 형태는 또 다른 위험성이 상존함을 보여준다. "공각기동대" 같은 경우는 육체조차 단순한 껍데기일 뿐이라고 상정하고 중요한 것은 영혼이라고 본다. 영혼은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리저리 다른 전자두뇌로 옮겨 다니며 쉽게 육체를 바꿀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전자뇌를 해킹해서 그 사람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상황까지 보여준다. 지금도 해킹으로 수 많은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다양한 2차 범죄들이 발생하는데. 내 뇌가 해킹되어 내 의지는 없어지고 다른 사람의 조정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미래가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아니면 그 중간쯤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이득만큼 부작용도 상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아무튼 미래에 인간이 기계와 결합하든 아니면 인간의 영혼만 있고, 육체는 단순히 껍데기 뿐인 존재가 되든, 지금보다 더 강력한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이라는 생각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전자 두뇌가 네트워크에 쉽게 접속하는 것은 당연하고, 공각기동대에서 인간의 영혼이 육체를 옮겨갈 때 이용하는 것도 일종의 네트워크를 통해서니까.그렇지만 그 네트워크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그렇게 인상적인 것이 없는 것 같다. 2.0이 마케팅의 당연한 수단이 되었을 정도로 웹의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었던 적이 있는데, 그 이후에는 아직 별다른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3.0이나 시멘틱 웹이니 하는 말들은 있으나 아직까지는 현실적으로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클라우드 서비스가 더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 리뷰를 쓰고 정리할 때 전에는 ms onenoteword를 썼었다면 지금은 evernote랑 구글 docs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니까.

 

어떻게 보면 인터넷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혁신적인 것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데이터 전송 속도야 빛의 속도가 한계 일테고.... !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틀렸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니... 그것이 사실로 증명되면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네트워크가 탄생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넷의 물리적 한계나 속도의 한계는 아직까지 명확하고,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혁신은 인터넷 서비스 산업의 혁신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2.0이니 웹 3.0이니 시멘틱 웹이니 하는 것은 결국에 인터넷 서비스의 형태니까.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인터넷이라는 것도 구글이 처음 등장했을 때나 페이스북 같은 Sns가 등장했을 때 같은 혁신적인 서비스의 탄생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정확히 어떤 형태의 서비스가 등장할지 명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인터넷은 지금보다 더 편리한 형태의 혁신적인 서비스가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은 인상적인 내용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브레인게이트"라는 장치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으로 컴퓨터와 같은 전자장치를 컸다가 껐다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미래에는 그렇게 될 수 있는게 당연한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브레인게이트"는 이미 임상실험에 성공한 기기라는 것에서 충격적이기까지 할 정도로 놀랍다. 레이 커즈와일이 예측한 뇌와 컴퓨터의 결합의 초보적인 형태가 지금 이미 이루어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두뇌가 기계와 결합하고 있는 현실을 본다면, 인간의 뇌와 인터넷의 연결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그런 인터넷에 대한 예측은 접속방식의 다양한 변화일 뿐 서비스의 형태의 변화가 아니다. 과연 우리가 만나게 될 미래의 인터넷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미래의 인터넷이라는 것에 대해서 포괄적인 형태의 예측을 하고 있다. 인터넷은 ""라는 정의를 내세우면서 앞으로 인터넷이 인간의 ""와 같은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인터넷은 뇌라고면 하면 너무 추상적이니 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인터넷이 점점 사고하는 능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인터넷은 뇌"라고 말한다. 지금의 인터넷이 서버에 저장된 정보를 보여주는 형태라면 미래의 인터넷은 생각하는 능력을 갖춰서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에게 맞춤형 정보를 전달하고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두뇌가 가지고 있는 예측의 능력까지 보여줄 것이라고 것이다.

 

뇌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뇌의 특성과 인터넷의 특성을 비교해가면서 설득력있게 인터넷이 뇌처럼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초보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검색엔진을 이용하면 볼 수 있는 연관 검색어나 철자가 틀린 것에 대해서 올바른 철자를 보여주는 기능 같은 것들은 바로 인터넷이 어느 정도의 예측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의 인터넷 서비스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휘에 있는 기업들은 인간의 두뇌를 연구해 인터넷과 결합시키려는 노력을 해던 기업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어떻게 보면 이런 기능들을 비롯해 앞으로 변화할 인터넷의 수 많은 예측력 같은 기능들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전해 줄지 모른다. 그런데 SF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터미네이터" "스카이넷"이 생각나고 영화 "메트릭스" 같은 미래가 상상 되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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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 - The Cl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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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랑 비슷한 컨셉과 느낌.. 그런데 긴장감은 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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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혁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경제학 혁명 - 신화의 경제학에서 인간의 경제학으로
데이비드 오렐 지음, 김원기 옮김, 우석훈 해제 / 행성B(행성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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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가 회복한다고 날리치던 언론과 정부의 말은 헛소리가 되어 버리는거 같다. 미국발 서브 프라임 사태로 2008년에 촉발된 위기가 또 다시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들려고 하고 있으니. 미국의 국가부채 문제에서부터 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 사태까지... 이에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에 의해서 증시는 폭락하고 환률은 급등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이 더블딥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부활할 것만 같은 경제가 순식간에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마다 각자의 이론을 가지고 다양한 해석들이 분분하지만, 2008년 경제 위기 발발 이후에 시작되었던 경기부양 정책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번 경제위기는 분명 탐욕이 부른 과도한 레버리지가 만들어낸 거품으로 인한 것인데, 각국의 경제정책들이 거품을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신용경색 회복에 주안점을 두었다. 정부는 거품을 제거하기보다는 거품이 낀 거대 투자 은행들이 무너지면 더 큰 경제위기를 야기한다고 판단하고 경제위기를 초래한 거대 투자 은행을 비롯한 많은 부실 기업들과 기관들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어떻게 보면 꺼져가는 거품을 살리는 정책으로 정부정책을 집행했다고 할 수 있다. 시장 만능을 외치던 시카고 학파가 몰락하고 쇄락해가던 케인즈학파가 부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아직도 시카고 학파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도 있는 등 케인즈의 부활을 부정하는 목소리도 다양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시장의 광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했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성장만이 살길이고, 성장하면 낙수효과로 경제가 살아난다고 외치던 사기꾼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보편적 복지에 대한 열망과 논쟁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발생해 이제는 정치권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려던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은 보편적 복지에 대한 목소리가 시장 만능을 외치는 사람들에 비해서 힘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주류 경제학이 가지고 있던 환상이 깨어지고 있는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떤 경제학자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가르켜 예측을 하는 학문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사건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경제학은 어쩌면 역사학과 같은 것인데 과거에 발생한 일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의 예측은 제대로 적중할 수 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경제학은 발생한 일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으로 간주된다. 수 많은 경제학자들의 예측이 제대로 맞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권위 있는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인간들은 계속해서 예측을 쏟아낸다. 그리고 그 예측이 실패하면 온갖 핑계를 대면서 자기 책임을 회피한다. 그러다 어쩌다 맞은 예측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열광한다. 나머지 예측이 다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맞은 예측만 기억할 뿐이다.

 그게 우리가 현실에서 접하고 기억하는 경제학이다. 영원 불변하는 진리가 아니라 어쩌다 맞으면 그것이 진리가 되고, 그것이 현실에 맞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류라는 이름으로 그것이 진리가 되는. 그래서 “경제학은 과학이라기 보다는 이데올로기다.”는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오렐의 말은 인상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경제학에 대한 제대로 된 통찰력처럼 보인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주류 경제학의 신앙과도 같은 것을 하나씩 비판한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 수요공급을 “실제로는 볼 수 없는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실증적 자료를 보여주면서.

 이 책이 경제학 이론에 대한 반례들만 제시하면서 기존의 경제학을 비판하는 책이었다면,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1가지”의 책과 비슷한 책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전문 경제학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단순히 반례만을 찾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연과학의 다양한 학문들과 현상을 끌어들여서 많은 경제학이론들이 진리가 아님을 보여준다. 저자는 경제학이 합리적인 것이라고 믿는 이유를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물리학이나 공학과 같은 2500년의 과학적 유산에서 나온 아이디어에 기초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아이디어가 아니라 진실로 증명된 과학을 끌여들여 통섭적 시각으로 경제학이 합리적이라는 신화에 과감하게 공격한다.

 이런 저자의 시각은 새롭다. 2008년에 시작된 경제위기가 주류경제학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리고 비주류 경제학에 대한 대중들의 주목을 이끌어내가 부활을 도왔다면, 이 책은 한발 더 나아가 경제학 자체가 가지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가 주류와 비주류만으로 바라봤던 경제학에 대해서 색다른 시선을 선사해준다. 이제 이데올로기로써의 경제학을 거부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한 경제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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