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 종양내과 수의사의 삶에 스며든 상실 그리고 사랑
르네 알사라프 지음, 박은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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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기분이 가라앉을 틈이 없다는 점이다

동물 환자들을 돌볼 때

그들은 내가 어떤 모습인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온전함을 느끼며

있는 그대로 완전히 괜찮다고 느낀다

p251


네 알사라프는 수의 종양내과 전문의로 이 책은 암에 걸려 치료를 받는 그녀의 동물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책에서 "C병"이라 표기하고 있는 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병, "암"이며,

저자는 29년간 수의 종양내과 수의사로 살아온 사람인 동시에 암환자이기도 했다.

"나는 원칙대로 싸우고 싶다. 배가 침몰한다면 마지막까지 배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고,

적어도 언제 구명 보트를 띄워야 할지는 스스로 판단하고 싶다."(P26)

말과 생각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은 때때로 그의 행동을 보지 않고서도 신뢰감을 형성할 때가 있는데, 저자 역시 글에서 드러나는 태도부터 강단이 느껴졌고, 에피소드마다 따스함이 스며 있어 읽는 내내 불편함이 없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제목에서부터 "아픈 동물의 시간"이라는 표현을 머금고 있다보니 자칫 슬프거나 우울한 내용들로 점철되어 있을까봐 지레 겁부터 났는데, 이유는 내가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 중인 집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먼저 떠나보낸 녀석을 여전히 그리워하며 펫로스를 심하게 겪은 케이스여서 읽은 뒤 우울감에 빠져들까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에서 수의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슬픔'이나 '위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개들이 완치판정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해피엔딩으로만 완성된 글은 아니지만 분명 "좋은 이별"을 참고할 만한 순간도 포함되어 있는 책이다.

'반려'라는 표현처럼 삶을 함께하며 이어온 유대감이 어느 날 찾아온 병으로 무너졌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고양이를 떠나보내기 전, 이들처럼 서로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깃들어 오히려 부럽기도 했고.

정신과 의사 '빈'과 9살 삼색 비글 '벤틀리'는 둘 다 암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개를 먼저 떠나보내는 상실감과 아픈 개를 두고 먼저 죽게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두 가지 상황을 걱정하며 내원하는 환자를 상담해야하는 암에 걸린 수의사라니. 이런 상황은 드라마에서도 본 적이 없어서 난감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기보다 그들의 상황을 차분히 정리하며 적절한 조언을 이어나갔다. 병과 싸워나가는 일은 마치 인생과도 같아서 위험에 처한 순간,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고통이 반감되기도 하고 반대로 가중되기도 하겠구나 라는 깨달음이 생겼달까.

좋은 의사이자 좋은 대화 상대인 저자는 8살 경찰견 프래니의 동료들이 치료방법에 대한 결정을 쉽게 하지 못하고 계속 문의를 하는 상황에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귀찮을 법도한데, 그녀는 프래니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답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결국 프래니는 건강하게 은퇴해 반려견으로 남은 생을 살게 되었다.

반려견에게 의지하던 두 가족의 에피소드도 잊혀지질 않는다. '은행을 털어도 천국에 갈 사람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좋은 가족인 데이지네는 11살 코커스패니얼 데이지가 림프종에 걸렸을 때 꼭 살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간질을 앓고 있는 어린 딸이 많이 의지하고 있는 대상이자 딸의 또 다른 보호자 역할을 톡톡히 해 왔기에 그들의 헌신과 사랑은 당연한 수순처럼 자연스러웠다. 화마에서 가족을 구한 러키의 병을 염려하며 대가족이 방문한 일화 역시 따뜻하긴 마찬가지였고.

어쩌면 저자 역시 암환자였기에 반려견의 아픔부터 보호자의 입장까지 두루두루 이해할 수 있을 듯 하여 더 현실적으로 읽힌 듯 하다.


암이라는 병은 생각보다 가까이 우리 곁에 있었다. 막상 내가 걸리지 않았을 뿐 주변을 둘러보면 몇 다리 건너건너 누군가는 앓고 있거나 완치판정을 받은 병명이다. 수의사라는 직업을 놓지 않으면서 병마와 싸워 이겨낸 저자와 달리 벤틀리의 견주는 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듯 하고, 비슷한 시기에 암 판정을 받은 그녀의 동갑친구 짐 또한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그녀의 반려견이었던 골든리트리버 '코즈모'역시 3차례나 암을 이겨냈지만 결국 재발 후 안락사를 택할 만큼 상태가 좋지 못했다.

굉장히 무서운 병이지만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에서는 "끝내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라고 전한다.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무서웠을 그녀는 자신의 환자와 보호자에게 어떤 조언자여야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끝까지 따뜻한 마음을 보태며 치료과정을 함께 했다. 이런 엄마의 아들이어서였을까. 등교 길에 아픈 새끼 고양이를 발견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피터의 멘트는 너무나 훈훈했던 것.

"1 교시 조금 늦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요. 엄마를 이 상황에 혼자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요"라니. 너무나 기특한 이 발언 속에 아이의 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슬픈 내용들을 잊게 만들었다. 

병으로 반려가족을 잃고 펫로스를 겪은 입장에서 아픈 동물들의 사연이 실린 내용을 읽는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위로는 직언으로만 전해지는 게 아님을 책을 통해 경험했다. 동물들과 그의 반려인들로부터 삶을 긍정하는 태도와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배운 저자가 남긴 에피소드들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서로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사랑이며 책임'이 아닐까.





불완전함을 축복할 수 있을 만큼의 자유로움을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우리 모두의 인생도 조금은 덜 암울하고 더 즐거울 텐데

p38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그 결심을 한 번도 흔드린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수의학은 내게 직업이나 소명, 의무를 넘어

삶의 방식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p95

#인문에세이 #동물에세이 #의학에세이 #돌봄 #펫로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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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문장들 -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고전의 명문장 100 CLASSIC RE:READ
김지수 편역 / 마음시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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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 빛나는 순간들 :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지혜

생각의 깊이, 깨달음의 너비 : 인생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사랑의 기쁨과 슬픔 : 관계들에 대한 글

고요 속에서 나를 만나다 :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고통을 지나 완성되는 삶 : 역경 속에서 찾아낸 용기와 희망의 의미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고전의 명문장 100개는 두껍고 어려운 책들 속에서 발췌된 문장들이 아니었다.

<키다리 아저씨>,<로빈슨 크루소>,<왕자와 거지>,<오즈의 마법사>,<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동화나 소설에서부터 <데미안>,<애너벨 리>,<제인 에어>,<페스트>,<노인과 바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방인> 처럼 심도있게 읽기 좋은 고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설 속에서 고른 문장들이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걸 기억하거라

F. 스콧 피츠제럴드 / 위대한 개츠비

서두를 필요 없어요

반짝일 필요 없어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버지니아 울프 / 자기만의 방


시집처럼 두껍지 않은 책두께에 크기도 문고판 정도의 사이즈여서 대부분의 가방 속에 쏘옥 들어갈 듯 하다. 그래서 햇볕 좋은 주말 부담없이 가지고 나가 읽거나 출근길에 잠시 꺼내 한 페이지씩 읽어나가기 적당하다. 장면이 그려질 정도로 길게 묘사된 페이지도 있지만 보통은 어느 한 대목을 떠올릴 정도로 짧아, 짬을 내 읽기 좋다. 만약 문해력을 키우는 고전 읽기에 도전한다거나 필사하기 좋은 명문장을 찾고 있다면 <영원의 문장들>이 안성맞춤인듯 싶다. 또한 중학교 한 학년 같이 읽기 책으로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난이도여서 술술 읽힌다.


한 두 권을 제외하곤 읽어본 책들이어서 문장을 접하는 것 만으로도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만약 낯선 제목의 책과 마주하게 되어도 당황할 필요는 없을듯하다. 문장을 탐독하며 원작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면 책의 뒷편을 펼쳐, 수록된 작품들에 대한 내용 및 정보를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총 64편의 짧은 줄거리가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의 독서로 이어진다면 제일 마지막 장의 독서 리스트를 활용하면 되겠고. 별점체크까지 가능해 100개의 문장으로 100권 책읽기에 도전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흔히 '인연','묘연'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책으로 인한 연은 '서연'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명언 내지는 짧은 에세이 같은 구간이 있는가 하면 대사처럼 읽히는 대목도 있어 일반적인 명언집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많은 책의 제목을 훑을 수 있어 고전 입문을 위한 목적으로도 좋은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의 다른 서평을 발견한 것처럼 흥미로웠는데, 각자에게 인상 깊었던 대목이 다른 만큼 타인의 감동 포인트를 엿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 어제 없던 것이 오늘 생겨나기도 하며, 익숙했던 것을 뒤로 하고 낯선 것들을 익혀야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게다가 어제의 뉴스가 오늘의 뉴스에 묻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의 높이가 변치 않는 고전의 명문장들이라니!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움과 아쉬움, 놀라움을 함께 경험하면서 첫 장을 펼쳤고 안도감과 흥미로움을 뒤로 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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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쇼핑몰 1~3 세트 - 전3권 (외전집 수록)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원작 소설 새소설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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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이 특이 케이스가 되는 세상을 그린 소설이 있다.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원작소설인 <살인자의 쇼핑몰> 의 세계관이 그러하다.

지루하리만치 평범하거나 눈코뜰새 없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이웃져 있지만 같은 공간 이계의 세계관이 펼쳐지는 '정진만 + 정지안 + 머더헬프+ 바빌론'이 존재하는 세상.

'마녀','폭군'과 더불어 미친 액션에 열광하게 만드는 연출컷까지 더해 그 독특함에 물들게 만든 <킬러들의 쇼핑몰>의 원작소설 세트는 3권 + 외전으로 엮였다. 원작과 드라마를 비교했을 때 더하거나 빠진 캐릭터도 있고, 스토리가 달라진 곳들도 있지만 "정지안 잘 들어"로 당부하는 정진만이 등장하고 삼촌이 없는 가운데 조카 정지안이 살아남는 뼈대는 동일하다. 원작은 원작 나름의 매력이 있고, 영상은 영상 나름의 열광 포인트가 있어 어느 쪽도 실망스럽지 않은데, 특히 세트에 첨부된 얇은 <외전>은 중심 인물이 아닌 주변인들의 사연을 다루고 있어 더 흥미롭다.

대학에 입학한 정지안을 근거리에서 보호하게 된 '그리마'가 옐로코드로 살아가게 된 사연,

2권과 3권 사이의 소민혜에게 생긴 어떤 엉뚱한 사건,

정진만의 고향친구인 택시기사 최상용의 가정사까지...

'머더헬프'와 '바빌론'의 세계관에만 주목하고 있던 독자의 허를 찌른 짧은 단편들은 '분노/당황/슬픔'의 감정을 툭 던져준다. 비록 예상 못한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러운 감정들이었지만 짧은 길이감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인생 한 대목을 함께하며 감정의 양념을 골고루 맛보게 해 작가의 필력에 다시금 감탄하게 만든다.

<살인에 서툰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니.

제목부터 너무 훌륭했다. 너무 당연한 일인 동시에 우리가 아는 '평범함'이 그들 세상에서의 '평범함'과 너무 달라 집단과 기준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잠시 벗어나 타인의 스토리를 읽는 건 때때로 '위로'보다는 '이탈'이 필요한 순간이 필요해 손을 뻗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4권을 읽는 사이 한 주가 지났고, 지나고보니 이전 고민들은 큰 일들이 아니었다. 세상이 망하는 일도, 내일 당장 죽는 일들도 아니어서 '감정적 휴가'를 선물받은 것 같아 도리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살인자의 쇼핑몰 세트>와 작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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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라이프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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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배경으로 한 닛타와 나오미 콤비의 활약을 볼 수 있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작가의 신작에서는 닛타가 경찰이 아닌 호텔 보안과장으로 등장하면서 색다르게 펼쳐진다.

30년 전 벌어진 2개의 사건

고등학교 1학년생 고스케 주변에서 일어난 일

'학폭 + 시험지 유출사건'은 야구를 함께했던 친구 니카라이가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이를 이상하게 여긴 고스케가 파고든 사건이었다. 결국 가해자는 밝혀졌지만 피해자 2명은 전학가 버렸고 학교측의 발표 역시 미적지근하게 끝나버렸다.

변호사 가쓰히사가 맡은 사건

오이즈미가쿠엔 가족 살인사건은 고스케의 아버지가 변호를 맡았던 형사재판으로 가장이 노모와 손자를 살해한 후 딸까지 죽이려했던 사건이었다. 결국 무기징역이 내려지고 이 사건은 30년 후 아버지와 딸이 마주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30년 후 발생한 사건

2년 전 실종되었던 간호사가 산 속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용의자로 추정되는 전남친이 '미스터리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걸 알게 된 경찰은 문학상 심사회를 호텔 코르테시아로 변경요청한다. 전직 형사 닛타 고스케가 호텔리어로 근무중이었으므로.

필명으로 투숙한 심사위원

마스크를 쓴 남자

딸의 연인을 소개받는 것으로 오해했던 투숙객의 실종

약속이 있다며 고스케의 호텔에 방을 잡은 아버지

수상해보이는 인물이 여럿인 가운데 닛타와 나오미 콤비는 또 다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흥미진진하게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훑어나가다 어느 새 정신을 차려보니 마지막 장이었다. 책 속엔 '가면으로 지켜 온 인생'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호텔을 방문하는 고객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으며 호텔리어는 그 가면을 존중하고 절대로 벗기려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보통 여행지에서의 투숙이나 힐링을 목적으로 방문한다고만 생각했지 '가면을 쓰고' 들어간다는 생각을 해 본일이 없어 이 대목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고보면 어떤 목적이든 '살아가는 나'가 아닌 '바라는 나'로 행세할 법한 장소같기도 하다.

삶의 터전이 아닌 특별한 장소인 '호텔'에 모인 사람들. 각자의 사연은 달랐으나 사건 모두 흉칙한 방향으로 발전되지 않은 채 제법 훈훈하게 마무리된 편이었다.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라고 여겨도 좋을 듯 싶게. 다만 작가의 타계 소식을 접한 뒤라 다음 시리즈가 있을까? 라는 마음이 들어 서글픔이 밀려오긴 했다.

개인적으로는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다음으로 마음에 든 소설이라 번역되지 않은 남은 소설이 더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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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나선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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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꽤 오래된 독자인 셈인데,

읽은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듯 작품 속 등장인물들도 함께 나이 먹어간다는 사실을 <투명한 나선>에서 체감했다.

물리학과 부교수였던 '유카와 마나부'가 이젠 나이 오십 줄의 정교수라니.

하지만 이정도의 발견으로 놀라서는 안된다. <투명한 나선>에서는 사건 해결뿐만 아니라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유카와' 교수의 개인사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를 읽으면서 단 한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던 유카와 교수의 인생사라니. 이번 화는 범인이 누구인가? 보단 유카와 교수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니에 포인트가 맞춰져 놀라움의 강도가 제법 쎈 편이었다.

이야기의 시작, 버려진 아이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였던 1950년에서 1970년 사이엔 중학생들이 졸업 후 단체로 대도시 취업을 하던 일이 흔한 일인듯 했다. 이를 '집단 취직'을 불렀는데,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지만 결국 도시 공장으로 취직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여인이 위험에서 자신을 구해준 바텐더와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로 <투명한 나선>은 시작된다. 행복했으면 좋았으련만 남자는 과로로 쓰러져 죽고 홀로 아이를 낳아야했던 여인은 결국 고아원에 딸을 맡기면서 세월이 훌쩍 건너 뛴다.

유카와 교수의 비밀 그리고 소노카를 둘러싼 진실

플라워샵에서 일하는 소노카는 의지하던 엄마를 잃고 혼자 남겨졌다. 엄마 지즈코가 고아원 출신이고 태어날 때부터 아빠의 자리는 비워져 있어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고 하는 편이 알맞은 상황이었다. 다만 생전 지즈코가 부모처럼 따르던 동화작가 나에씨가 있었지만 직계가족없이 외로워하던 소노카에게 동거남이 생기고 얼마 후 그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소노카는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폭력적으로 변해버린 남친을 피해 친구와 여행 중이었던 소노카에겐 알리바이가 있지만 경찰 조사 중 사라진 그녀. 소설에서의 맥거핀은 '외할머니가 아닐까?' 의심스럽던 부유한 노인 나에씨. 소노카의 도주(?)를 함께하며 그녀를 숨겨주는듯한 행동을 일삼은 나에씨는 경찰의 의심을 사기 충분했고 사건을 파헤치던 구사나기 형사는 사건 해결을 위해 30년 인연의 유카와 교수를 찾아온다. 특이한 소재의 동화를 집필해온 나에씨와 유카와 교수가 접점이 있었던 것. 그리고 독자의 오해가 굳혀질 무렵 등장하는 또 한 명의 노부인. 단아한 나에씨와 달리 화려한 히데미씨가 등장하면서 어느 쪽이 직계인가? 라는 혼동이 생기고 사건의 해결과 더불어 마지막에 밝혀진 소노카를 둘러싼 진실은 애잔하면서도 참 씁쓸했다.

갈릴레오 시리즈 최신작 < 투명한 나선>에서는 유카와의 비밀 하나가 열린다. 담담하게 직접 알려주는데 그동안 사건의 트릭을 뛰어나게 풀어냈을 뿐 사생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던 캐릭터였던 그가 사건과 얽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장면은 무대나 영상을 통해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10대나 20대가 아닌 중년남자의 입장이라 담담할 수 있었을까.

의문은 남았지만 의혹을 덮고 모른척한 쪽과 사실을 털어놓은 쪽 중 누가 더 후련했을까.

단편 수록작 <겹치다>

58세의 부유한 사업가 도조노는 암선고를 받고 은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가 시체로 발견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집에 남았던 부인 요리코. 그 다음은 마지막으로 만난 여든 살 노인 도나미. 형사 구사나기는 수사 끝에 뺑소니범을 찾아냈으나 살인을 의뢰한 범인은 특정할 수 없어 유카와 교수를 찾아왔고 그는 범인과 더불어 왜 도조노가 강에서 발견될 수 밖에 없었는지까지 풀어낸다. 모든 과학자가 추리력이 만렙인 건 아닐텐데 트릭을 벗겨내는 과정은 언제봐도 놀랍다. 그래서일까. 유카와 교수를 보는 동안엔 그가 물리학 교수인지, 탐정인지 잠시 잊고 만다.

언제부터였을까?

전부 거짓말은 아닐까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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