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부는 사나이라도 나타나는 것일까. [아이들 없는 세상]은 그 제목만으로도 삭막함이 묻어났다. 무엇 때문에 아이들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눈먼자들의 도시,절망의 구에서처럼 무언가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만든 아이들 없는 세상은 생각보다 짧은 이야기였다. 삽화를 제외하면 페이지는 한 장 반 가량. 짧은 단편 모음집이라고 해도 한 편이 이토록 짧아도 되는 것일까. 맨날 싸우기만 한 어른들이 싫어 단체로 사라진 아이들. 교황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호소하고 대통령이 아이스크림을 주겠다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속삭여도 나타나지 않았던 아이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어른들이 충분히 깨달았을테니 돌아가기로 결심한 아이들이 나타난 다음날 세상은 온통 반가움 투성이었다.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 주인공인 누군가가 없는 이 짧은 동화는 아이들의 마음이 물씬 묻어나서 웃음짓게 만든다. 삽화 또한 색색의 화려함과 단순함이 마치 천재 아동의 그것인것처럼 보인다. 세상에 이토록 짧은 단편들이 모여도 되는 것일까.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정말 짧디짧은 단편 20편이 이 한 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이 필립 클로델 식인가보다.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소설가라는 필립의 책을 나는 처음 접해보았다. 여러 이야기를 썼고 시나리오까지 써서 직접 연출을 하고 있는 이 다재다양한 작가는 어른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는 것들을 아이들 입장에서 잘 써내려가고 있었다. 비록 [얼굴빨개지는 아이]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우리를 사로잡진 못했지만, [영앙만점 어린이 음식백과]처럼 교훈적인 내용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의 동화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나 어른이 함께 읽기에 적당한 책처럼 보인다. 마치 우리곁에 봄빛이 다가오듯 따뜻해지는 짧은 글들, 어른이 아이의 손을 빌려 쓴 것 같은 그 천진난만함이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온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삽화였는데, 구체화된 그림 위로 칠해진 색깔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이 칠한 것처럼 삐뚤삐뚤하고 칸 밖으로 튀어나가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친근감이 가는 그림들이었으니 제목과 딱 어울리는 그림들이 아닐까 싶다. 필립 클로델의 무공해 빛 동화. 아이도 엄마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동화같은 소설 한편을 요즘같은 계절에 읽어놓는다면 우리의 동심도 광합성 하듯 영양분이 보충되지 않을까.
에데베 문학상 수상작이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가 데뷔작인 [안개의 왕자]는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다. 유령인듯 귀신인듯 한 수염있는 남자가 인화가 잘못된 사진 속에 머물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어떤 두려움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 하려는 것일까. 대체 안개의 왕자는 어떤 사람일까. 연작시리즈 중 하나라고 해서 이어지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작가의 3작품이 안개와 관련있는 내용이다보니 안개시리즈로 묶여진 듯 했다. 아이를 담보로 한 악마와의 거래 라는 소갯글을 보면서 다른 소설 속 악마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악마와 거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소재인 듯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거래를 통해서 인간과 접촉했고, 거래는 반드시 악마가 이기는 걸로 귀결되어지곤 했다. 이상하게도 악마라고 하면 반칙의 제왕들처럼 보이는데, 그런 그들이 인간과의 거래라는 공식을 철썩같이 지키는 면은 마치 우등생이 교칙을 지키는 것과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전혀 지킬 것 같지 않은 그들이 지키는 한 가지 원칙이라... 책 속의 악마는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왜 동화책의 제목처럼 안개의 왕자라고 달콤하게 불리는지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는 손가라가에 힘을 주어 가속도를 붙여댔다. 안개의 왕자. 그는 늘 자신이 이기는 거래의 주인공이었다. 영혼의 사채업을 시행하듯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래에 걸게 만들면서 원하는 것을 취해갔다. 어쩌면 꽤 매력적일 이 캐릭터는 하지만 중심에 서지 못했다. 안개의 왕자는 전면에 나오지 않은 채 소설은 시종일관 한 가족을 향해 앵글을 고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버 가족은 이사왔다. 새 동네는 시골 동네였지만 가족이 평화롭게 살기 좋아 보였고, 시계수리공인 아버지의 직업도 꾸준히 이어 갈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1943년 6월 그렇게 가족은 이사를 결정했고 조그만 바닷가 마을로 왔다. 막스가 열세 살이 되던 해였다. 부모님 외에 위로는 알리시아 누나가 아래로는 이리나라는 여동생이 있는 막스는 마을에서 롤랑이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롤랑은 등대지기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막스가 이사온 집은 할아버지의 친구 부부가 살던 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식구들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저 너머 안개에 휩싸인 어떤 묘지 같은 것을 발견한 막스는 어느날 아버지가 집에서 찾아낸 전주인의 기록영화를 보고 그 묘지가 찍힌 것임을 알아챈다. 묘하게도 막스가 본 모습과는 조금씩 다른 영상을 보며 막스는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한편 롤랑과 알리시아 사이에 로맨스의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 롤랑 할아버지를 통해 침몰된 오르페우스호의 전설과 안개왕자 그리고 전주인인 플레이슈만 부부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세사람. 그러나 그들의 아들 제이콥이 죽은 것이 아니라 롤랑이 바로 부부의 아들 제이콥임이 밝혀지면서 진정한 공포가 시작되고 있었다. 거래의 끝과 정해진 운명의 잔인함. 그리고 남겨진 그들이 기억하는 진실은 어느 것 하나 반길만한 것이 없다. 만약 영화화된다면 안개의 왕자인 닥터 케인 역은 누가 맡으면 좋을까 하고 헐리웃 배우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음습하게 그려지기 보다는 [캐러비안의 해적]처럼 영상화된다면 어울릴 것 같은 [안개의 왕자]는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참 재미난 작품이었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것~!! 희생을 담보로 하긴 했지만 정해진 운명이라는 사실은 사람으로 하여금 참 힘빠지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겠다 . 작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 스물 셋이 되어서도, 마흔 셋이 되어서도, 심지어 여든 셋이 되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을 써봐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작가의 그 마음에 공감을 하면서 작가의 책들을 그런 마음을 실어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오즈의 마법사]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동화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갖고 싶어지는 까닭은 아름다운 일러스트 때문일 것이다. 김민지의 일러스트는 정말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마법을 우리에게 뿌려대고 있었다. 캔자스의 작은 소녀 도로시는, 엠 아줌마의 집에 살지만 어느 날 바람에 날려 이상한 나라로 와 버렸다. 허수아비가 말을 하고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가 존재하는 곳. 얼마전 보았던 팀버튼 감독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도로시는 이상한 나라에 뚝 떨어져 버렸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강아지 토토와 함께였다. 엠 아줌마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던 그녀는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용기"가 필요한 겁쟁이 사자, "뇌"가 필요한 멍청한 허수아비, "심장"이 필요한 양철나무꾼. 그들은 모두 제각각의 소원을 가지고 도로시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만약 팀버튼이 오즈의 마법사를 영화화한다면 이처럼 따뜻한 색감을 낼 수 있을까. 특이하고 기발하지만 항상 음울한 색을 만들어내던 거장의 [오즈의 마법사]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결국 오즈를 찾아내지만 그는 마법사가 아니라 위대한 사기꾼 정도의 늙은 할아버지였다. 그런 그는 마법대신 "칭찬"으로 긍정의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용기","뇌","심장"을 만들어내었다. 말 한마디로 그는 마법을 창조해 낸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지만 오즈의 마법사는 "칭찬으로 없는 것들을 있게 만든다"를 증명해 낸 똑똑한 사람이었다. 결국 도로시는 원하던 집으로 되돌아왔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엠아줌마의 품으로. 사실 이 이야기는 두번, 세번 읽어도 똑같다. 매번 다른 것을 상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인해 오즈의 마법사 스토리가 몽환적으로 보이게 만든 책은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