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이규원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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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재판을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방청하기로 결심했다    P11

 

 

<파계 재판>,<법정의 마녀>,<유괴>순으로 '다카기 아키미쓰'의 범죄소설을 읽은 것은 잘한 행동일까. 순서야 어찌 되었든 <유괴>는 첫 페이지부터 강한 펀치를 날리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범죄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 완벽한 범죄를 위해서 재판을 방청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엘리트 치과의사가 바보스러울만큼 엉성하게 저지른 유괴사건의 재판을 방청하며 모방범을 꿈꾸는 범인에겐 과연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그는 무엇을 위해서 어린 아이를 유괴할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일까.

서른 살의 '기무라 시게후사' 가 오야마 기이치를 유괴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환자가 많은 치과병원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본처와 별거중이면서 내연녀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던 그는 백팔심만 엔이라는 빚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하지만 그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고 어리석었다. 그 재판 과정을 방청하며 완전범죄를 계획했던 범인은 대부업으로 큰 돈을 번 라이조의 외동아들을 유괴했고 '기무라' 사건처럼 돈을 요구했다. 첩을 본처로 들여놓고도 밖에 여러 여자를 거느리며 사는 고약한 성미의 노인 라이조. 나이차 많이 나는 남편에게 애정이 없던 차에 젊은 예술가와 바람을 피고 있던 아내 다에코. 양쪽 부모 모두 적이 많아 용의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범죄처럼 보이던 사건을 수임한 것은 변호사 햐쿠타니 센이치로였다.

 

범인이 요구한 돈조차 중간에서 증발해 버린 상황 속에 봉착하자 라이조는 후계자인 아들을 살리기 위해 현상금을 내건 동시에 아내와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영리한 '포샤'같은 아내를 둔 센이치로는 인해전술로 범인과 승부를 보자는 그녀의 제안에 솔깃했고 아키코의 말대로 범인 찾기에 돌입했다. 그리고 곧 한 남자가 물망에 올랐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에게 아이의 몸값은 껌값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의 빅픽처는 라이조의 전재산이었으며 이를 위해 아이를 유괴해서 죽이고 아내의 불륜사실을 라이조에게 알린 것이었다. 하지만 영리하게 굴었던 그는 센이치로의 단 한 마디로 무너져버렸다.


"당신은 기무라보다 더 바보 얼간이였어.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게 사체를 처리했어." 살인죄를 받지 않기 위해 완벽을 기했던 것이 그만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던 것. 바다에 버려진 시체을 찾을 수 없는 한 아이는 칠 년 간 행방불명 상태로 존재하고 그 사이 라이조가 죽게 되면 이혼과 상관없이 아이의 엄마에게 재산이 귀속되는 것이다. 수습책으로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범인이 심신상실자로 형을 비켜가게 될 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딱 거기까지만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법꾸라지처럼 법을 비켜갔다고해도 그의 범죄는 완벽하지 못했다. 돈을 목적으로 했던 비정한 사내들 때문에 어린 아이 둘이 목숨을 잃었다. 소설 속 이야기라 하더라도 이는 너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트릭이 뛰어난 소설이었지만 종국에 남겨진 건 슬픔일 수 밖에 없다.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었을 때만큼이나 인간의 추악한 마음 한 자락을 보게 된 것 같아 찜찜하다. 하지만 책의 재미는 인정. 작가의 뛰어난 필력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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