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작가의 작업실
후쿠인칸쇼텐 「어머니의 벗」 편집부 지음, 엄혜숙 옮김 / 한림출판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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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포인트에서 위로받고 말았다. 정돈되지 않은 그림책 작가들의 책상을 보면서. '아, 나만 너저분하게 쓰고 있는 것이 아니었어."라는. 책과 종이가 겹겹이 쌓여 있는 책상에서 일어서면서 언제나 조금쯤은 자책감이 들곤 했는데, 훌훌 벗어던져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묘하게(?) 고마운 16명의 일본 그림책 작가들은 모두 생소한 사람들이었다.

일본 잡지 <어머니의 벗>에 연재된 "그림책 작가의 아틀리에 "시리즈를 묶어 발간한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에는 앞서 언급되었듯 16명의 작가가 등장한다. 전후 일본에서 새로운 그림책의 기초를 닦은 작가들이어서 세대가 맞지 않아 그들의 이름이 낯선 것일까. 아카바 수에키치, 다시마 세이조, 나키타니 치요코, 사사키 마키, 안노 미쯔마사....모두 유명한 작가들이라는데 단 한 명도 아는 이름이 없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벗> 편집부가 서문에서 당부했던 말처럼 '작가의 책상이나 그림 도구 사진을 보면서 그들이 창작에 임하는 자세나 인품을 느껴보려' 애썼고 읽는 내내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인가에 주목하며 읽어나갔다.

 

종전국인 일본 역시 전쟁의 후유증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작가들의 삶 또한 평범할 수 없었으리라. <수호의 하얀 말>을 그린 아카바 수에키치는 열세 살 때 누나의 시댁으로 양자로 들어가야 했고 일본이 아닌 만주로 건너가 힘든 삶을 살아야했다. 스물 넷에 만나 가정을 꾸린 가장으로 네 아이의 아빠로, 회사원으로 살던 그의 그림이 만주국미술전에서 특선으로 뽑히면서 그림그리기를 이어나갔고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삽화와 간판 그리는 일을 업으로 시작했다는 그의 인터뷰는 특이하게도 본인이 아닌 며느리(셋째 아들의 부인)를 통해 진행되었다고 했다.

 

 

좋아하는 동물그림을 잔뜩 그려낸 작가 '야부우치 마사유키'의 그림책은 국내에 단 여섯 권만 소개되어 실망스러웠다. 일본화가였던 외할아버지와 동물을 좋아했던 친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많은 동물 속에서 자라난 소년은 동물화가가 되었는데 놀라운 점은 그는 취재 여행을 나가도 전혀 스케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얼마나 정교한 눈을 가졌던 것일까. 계속 바라만 보다가 집에 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모처럼 진짜가 거기에 있으니까"라는 말은 그래서 감동이다. 순간의 소중함을 놓치고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명언이므로. 보고 싶은 1966년작 들고양이 표지의 책(동물의 부모와 자식?)이나 여우 혹은 너구리로 보이는 녀석이 어린 새끼를 물고 있는 <동물의 엄마>는 한국에서 출간되지 않았다. 일본 여행길에 살짝 구경해야겠다. 아쉽게도 그의 그림책들은.

 

 

그 외에도 유명한 그림작가와 그들의 서재, 삶의 기록을 읽으면서 국내에 많이 소개된 작가와 그렇지 못한 작가의 차이점은 무얼까? 궁금해졌고 요즘 글로벌한 동화작가들의 그림책과 그들의 작품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싶어졌다. 올드할 수도 있고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 그림이 주는 생동감은 여전하지 않을까.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일본의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 뿐만 아니라 국내 그림책 작가들의 이야기도 소개된다면 재미있을텐데...라는 생각을 덧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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