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ツバキ文具店 (單行本)
오가와 이토 / 幻冬舍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가마쿠라의 일 년은 특이하게도 여름부터 시작된다고 여기는 아메미야 하토코의 집안은 대대로 대필가로 살아왔다. 흔히 대필이라고 하면 긴 장문의 글을 대신 써주는 고스트 라이터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와 다른 문화권인 일본에서 '대필'은 축의금 봉투의 이름, 기념비에 새길 글, 간팡, 사훈을 쓰는 일인듯 했다. 글씨가 예쁜 사람도 대필을 맡기다니....! 그런 의미에서 선뜻 와 닿진 않았지만 재미난 문화를 구경하듯 읽게 된 <츠바키 문구점>은 생각보다 훨씬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었다.
마담 칼피스가 주문한 조의문은 짧막하게 봉투에 새길 이름정도가 아니었다. 곤노스케라는 사람과의 추억을 듣고 사진을 보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붓을 들고 써내려간 조문편지는 한 편의 시처럼 정갈했다. sns로 빠르게 안부를 주고 받고 비즈니스업무를 메일링으로 시간차 없이 처리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대필가'라는 직종이 인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지만 소설 속 선대인 할머니는 장인정신이 스며든 진정성 있는 답변으로 생각 짧은 독자의 어리석음을 날려버렸다.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어도 ... 마음은 담겨 있어. 대필도 마찬가지야. 자기 마음을 술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대필을 하는 거야. 그 편이 더 마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p32)
이후로도 대필일은 간간히 이어졌다. 그 중, 지인들에게 이혼 보고를 하면서도 '일방적으로 아내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전남편의 마음이 담긴 편지는 십오 년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는 방식치고는 참 배려깊게 느껴졌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이혼 전문 변호사가 아름다운 이혼은 없다고 말했는데, 서로 싫어져서 헤어지는 만큼 원망과 추악함이 난무한 이혼만을 상상했던 내게 예의 바른 이별의 모습을 보여주는 첫 예라서 감동의 깊이가 더 진해졌다. 이쯤되니 왜 대필이 필요한지 분명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면 이어지지 않았을 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