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와 곤지왕 - 상
정재수 지음 / 논형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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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이 셀럽급이라면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의 왕들은 무명 연기자의 이름처럼 생소하기만 하다. 그 중에는 신스틸러같이 그 이름을 알린 왕들이 몇몇 있긴 하지만 조선 왕들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갈래인 것과 달리 한 가지 이미지로 기억에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토론의 역사가 아닌 주입식 역사교육의 한계는 이렇게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대목만 기억에 머물게 만들고 말았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여러 역사책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던 내게도 백제의 곤지왕은 미지의 존재였다. 머릿 속에 백묵이 뿌려진듯 뿌옇게 만들어 버린 이름 하나, 곤지왕. 그는 어떤 왕이었을까.



한일 고대사에 깊은 관심을 두고 역사연구에 몰두했던 정재수 작가의 소설 속 곤지는 백제 사람이었다. 책속에 삽입되어 있는 '부여왕족의 계보'를 참고하자면 그는 20대 비유왕의 아들 중 하나로 개로왕과 문주왕 사이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동성왕, 무령왕의 아비이기도 했다. 왕이라고 호칭하고는 있지만 20대 비유왕 다음으로 왕위를 물려 받은 것은 개로왕이며 곤지의 아들 동성왕이 24대 무령왕이 25대로 이어진다. 개로왕과 문주왕은 각각 왕의 지위에 올랐으나 그 사이 곤지는 왜 뛰어넘어버렸던 것일까.

최소 5명의 부인과 5남 3녀를 두었다는 백제의 완족, 곤지(여곤). 그는 어떤 남자였을까. 해외여행이 흔치 않았던 시절 일본과 백제를 오갔던 사람으로 추정되는 그의 자취는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아스카베신사>에 제신으로 모셔진 곤지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작가의 역사다큐소설 1권을 펼쳐들었다.

 

1권의 이야기는 아버지인 비유왕이 원하는 여인을 품고도 왕비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내용으로부터 시작된다. 해씨가문은 무조건 진씨가문과 결혼해야하고 겹사돈의 탄탄한 구조가 권력을 더 견고히 만들어 왔다. 하지만 선대 전지왕은 야마토 왕가 출신의 팔수공주를 왕후로 맞이했고 그녀의 아들 구이신왕은 혈통면에서 신하들의 충성을 얻기에 미흡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팔수태후의 죽음이후 구이신왕은 제거되었고 비유는 신왕으로 등극했다.  왕(어라하)이 되었지만 그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그의 넷째 아들 곤지가 오가던 무렵의 일본은 정권이 교체되고 왕족이 살해되기도 하던 어수선한 무렵이었으며 형제국으로 받들던 백제에 대한 태도가 미묘하게 틀어지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이를 오갔던 곤지왕의 입지, 선택은 중요 포인트가 될 수 밖에 없다. 겨우 1권을 읽었을 뿐이라 그가 어떤 업적을 남기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나 <일본서기>에서조차 야마토에 입경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분명 중요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백제 곤지왕>이든 <아스카 곤지왕>으로 불리든 참 미스터리한 이 인물임에는 분명한 그의 과거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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