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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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 "누구나 자기가 정해놓은 감옥 속에 갇혀 사는 거야"라는 대사가 나온 적이 있다. 마침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스파이>를 읽고 있던 터라, 그 대사가 바로 와 닿았다. 타인에겐 한없이 자유롭고 화려한 삶이었으나 그 끝이 처참했던 한 여인의 삶이지만 정작 그녀 스스로에겐 어떤 삶이었을까.

 

 

그 이름이 유명하여 어릴 적부터 이름만 알고 있었던 전설의 '마타하리'. 보통 삶이 어떠했다 주저리주저리 덧붙임이 있는 것과 달리 그녀의 특이한 이름에 "누구에요?"하고 궁금증을 가져도 어른들은 그냥 "여자 스파이야"하고 말았었다. 어느 나라 스파이인지, 외모는 어땠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종말을 맞았는지, 어쩌다 스파이가 되었는지, 여자 제임스본드 같았는지....'스파이'라는 단어 앞에 다른 설명들이 있을 법도 했지만 하나같이 어른들은 스파이라는 단어 하나만 던져주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지만 찾아볼 방도로 따로 없어서 잊혀졌던 그 이름을 대작가의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어 감회가 새로울 수 밖에 없었다. (마치 나의 궁금증을 알고 석탄 캐듯 그녀의 삶을 캐내어 준 것 만 같아서 나는 그가 때때로 디즈니 만화 속 '미키 마술사'가 아닐까 상상되어질 때도 있다)

 

 

"죄가 없다"라고 말할 수 없으나 일부 억울함이 없을 수 없는 그녀의 삶. 작정하고 스파이가 되었는지, 어쩌다 보니 삶이 그렇게 흘러가버린 것인지는 정말 그녀만 아는 진실이 아닐까. 혹은 그녀는 자신의 결정마저 헷갈릴 정도로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기억하며 살았던 여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여인을 총살하는데 과연 열 여덟명의 장교들이 우르르 몰려와 열두 명씩이나 총을 쏴대야하는지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책의 시작페이지에는 분명 {사실에 근거함} 이라고 적혀 있었으니 역사적 고증을 거친 작품이리라 믿는다. 잔 다르크, 앤 불리, 마리 앙트와네트, 마타하리까지....사형당했던 순간 그녀들의 머릿 속을 스쳐간 생각들은 '후회'였을까. '분노' 였을까.

 

 

마타하리의 사망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놀랍게도 그녀가 변호사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어진다. 마르하레타 젤러는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에서 너무 예쁜 소녀로 태어나 자라났다. 미모가 재산일 수도 있었을텐데 잘못된 시대, 잘못된 도시에서 태어난 죄로 그녀의 미모는 죄악이 되었다. 열여섯에 이미 학교장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그녀는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결혼하게 된 스물 한 살이나 많은 남편은 폭력적인 변태였을 뿐. 삶은 더 비참해졌다. 그런 그녀를 구원한 건 뜻밖에도 다른 여인의 피였으니....트로피와이프처럼 대동된 파티에서 그녀에게 매혹된 한 남자의 아내가 권총자살을 했고 그녀의 피를 흠뻑 뒤집어쓰면서 마치 세례를 받듯 새로운 삶을 선택할 용기가 생긴 그녀는 이름마저 '마타하리'로 고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삶을 훌훌 벗어던지듯 걸친 옷들을 하나,하나 벗어던지며 추는 그 요염한 춤에 매료된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나며 춤을 추기 시작했지만 불행히도 '이사도라 던컨'이 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접근해온 남자들은 하나같이 육체를 탐하거나 이용가치를 따져보는 남자들이어서 종국에 '스파이'로 이름을 남기게 된 것 역시 스스로 결연한 결심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쪽이 더 맞는 듯 하다. 사기꾼, 매춘부, 반역자(제1전쟁위원회에서 받은 판결)로 손가락질 받았던 그녀의 삶. 1917년 2월 처형 부대 앞에 서게 될때까지 그 삶이 구구절절하게 묘사되지 않아 작가의 필력을 감탄하게 만든 <스파이>는 물흐르듯이 참 편안하게 읽힌다. 그녀의 편도, 매도하는 쪽도 아닌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시선으로 쭉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다정한 눈길이 살펴졌던 작가의 시선에서의 그녀는 무시무시한 스파이도, 육체를 이용하여 남자들을 굴복시키던 요염한 요부도 아닌 그저 주어진 삶에서 탈출하고 싶어 몸부림친 한 안타까운 여인이었을 뿐이었다.

 

 

"신이 다시 기회를 준다면 다르게 살 수 있었을까" 작가가 던진 이 한 문장만 보아도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이에 대한 대답은 그녀 스스로도 쉽게 할 수 없다. 삶은 정말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므로. 수많은 선택의 갈래 중에서 누구와 손잡고 어떤 길을 갈지는 그 때가 닥쳐보아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죄가 무거워 사형당했다기 보다는 필요에 의해 집행된듯한 사형이라는 의심을 낳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대목이 '에필로그'에 첨부되어져 있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우리가 확보한 증거는 고양이 한 마리 벌줄 만큼도 되지 못한다" - 앙드레 모르네 검사(p216)



당시의 살로메로 불렸던 마타하리. 그녀는 정말 스파이였을까.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사실로 인해 죽임을 당해야했다면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얼마나 무서운 시대였단 말인가. 유럽을 사로잡았던 화려한 무희 마타 하리의 자유로운 삶. 표면적으로는 많은 인식적 발전, 사회적 참여의 기회가 예전에 비해 많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용기가 필요한 순간순간들이 있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는.....!!'더 비참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를 목표로 둔 선택에 용기가 필요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라는 거다.

 

 

여성의 삶이 질적으로 얼마나 많이 좋아졌나를 평하기에 앞서 행복지수가 얼마나 많이 높아졌나를 두고 평가해보자면 사실 점수가 얼마나 높아졌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180도 바뀐 세상에서 살고 있진 않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 대통령이 선출되고, 여성 파일럿이 뽑히고,여성 ceo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평범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지표가 기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중 하나가 되어 살아보는 삶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마타 하리'는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이곳을 선택할까.

 

 

구구절절하게 늘어지거나 스파이 혐의를 받았던 무희 시절에 집중되어 화려하게 묘사될 수도 있었을 드라마틱한 그녀의 삶이  파울로 코엘료라는 대작가의 필력을 빌려 담담하게 회고되었다. 마치 짧은 에세이 한 권을 펼쳐 읽듯  편안하고 가볍게 읽혀서 불편한 페이지가 단 한 페이지도 없었다. 또한 그녀에 대한 그 어떤 편견도 남기지 않아 좋았던 <스파이>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으며 좋겠다 싶어진다. 다만 <연금술사>나 <순례자>에서 보여주었던 인생 명문장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약간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 보는 책이지 성찰의 문장을 찾아헤매기에 적당한 서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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