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보다 냉철한 판단력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기자의 눈에 '어린 아이 유괴'는 어떻게 보였을까. 영국언론어워즈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기자상'을 받은 피오나 바턴 기자의 첫번째 소설은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화자를 유괴범의 아내로 두고 있다는 점은 이례적인 느낌을 준다.
악명 높고 끔찍한 범죄 사건의 경우, 자신도 모르게 용의자의 아내를 관찰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는 저자는 그 심경을 상상해보며 그녀의 첫번째 소설을 완성시켜나간 듯 하다. <<비밀의 삼킨 여인>> 속 화자 중 하나는 '지니'라고 불리는 진 테일러.세상 사람들의 눈엔 공범일지도 모르는 유괴범의 아내이자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얼이 빠져 있는 여자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지니는 사실 남편 글렌이 죽기만을 속으로 바래왔던 여인이었다. 학대가 있었을까? 를 의심했지만 학대보다는 방치라고 해야할만큼 남편은 그녀에게 무관심한 남자였다. 그보다는 그녀 외 밖에 있는 모든 여인들에게 관심을 둔 흔히 볼 수 있는 바람둥이 남편 유형이었으며 어린 소녀들에게 주로 성욕을 느끼는 로리타족으로 그려져 있다. <부인><기자><엄마><형사> 이 네 파트 중 부인 파트 이야기가 바로 진이 내뱉는 진실이다.
<기자>파트의 케이트 워터스는 꼭 저자 자신처럼 그려져 있다. 내키진 않았으나 바닥난 잔고를 보며 데스크의 명령을 어기지 못하고 미망인의 노련한 관찰자로 붙여졌고 다른 모든 기자들이 실패한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지니의 경계심을 풀고 인터뷰를 따낸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인터뷰였을까.
<엄마> 파트에 등장하는 던은 어떤 인물일까. 애지중지하던 어린 딸을 잃고 울부짖는 모성의 여성? 그것 비춰지는 모습뿐이고 관심받고 싶어 안달난 여자가 바로 '던'이었다. 자신의 딸 '벨라를 찾아주세요'라며 인터뷰도 하고 페이스북페서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과도 소통하며 주목받는 상황을 일부 즐기고 있었다. 과거 즉석만남을 원하는 남자들과 하룻밤을 보낼 채팅 페이지에 자신을 올려두었던 '던'은 애가 셋이나 딸린 무정한 유부남 에반스와의 불장난으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해 엄마가 되었다. 자신을 치장하고 외출을 즐기던 그녀였건만 그 모든 일을 스톱시킨 것이 바로 딸 벨라였던 것. 그래도 스물 여섯 미혼모로 살게 된 것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었건만...그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섹스에 굶주려 채팅창 앞에 모인 남자들 앞에 부주의하게 자신의 어린 딸 사진을 투척했다. 그 결과 딸은 유괴되었고 이내 죽음을 맞이했다. 진실은 그러했다.
유괴범으로 손가락질 받아온 남편이 사실은 결혼 후 줄곧 외도를 해 온 남자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당장 헤어져야만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싫으면서도 그의 곁을 지켜야했던 아내 '지니'의 정신상태 역시 건강한 성인의 그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남편을 지지한다는 것. 그의 부정을 알면서도 완벽한 아내로 살아야할만큼 남편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정이 파탄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유형도 아니면서 왜 그래야했을까.
글쎄...'결혼 생활에는 언제나 비밀이 존재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이런 식의 비밀이라면....털어버리는 쪽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남편은 이미 죽었다.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되었고 달콤하게 다가왔던 기자의 목적도 드러났다. 무엇을 망설여야한단 말인가. <비밀을 삼킨 여인>에 깜짝 놀랄만한 반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딱히 예상되는 결말을 에세이 읽듯 고요하게 읽어냈을 뿐이다. 형사, 부인, 기자, 엄마 그 어느 쪽에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서인지 마음이 쓰라리거나 안타까움이 배가 되진 않았다. 다만 모두가 주위를 둘러보면 있을 법한 인물들이라는데서 최근 읽은 소설 중 가장 리얼리티적이라는 감상만을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