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첫째 아들이면서 왕이 되지 못했던 혹은 되려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사내,
양녕대군. 역사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감초처럼 등장하곤 하는 그는 군주 곁의 현자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난봉꾼으로, 어느 순간에는 의뭉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어느 모습이 진짜 그의 모습인지 알 수 없을만큼 그에 대한 해석은 다양했다. 하지만 언제나 양녕대군에 대한
이야기뿐이었고 그의 후손에 관한 이야기가 없어서 평범했나보다 했더니, <특종! 엽기 스캔들>에서 언급되고 있었다.
양녕대군과 첩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이구지'는 권덕영의 아내였지만 천례라는 사내종과
눈이 맞아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왕인 성종은 신하들을 향해 "그냥 덮어두어라"라고 했다고 한다. 셋째 아들 서산군 이혜는 또
어땠는가. 세종시절 홍치 호군의 상 중 첩을 덮치려다 미수에 그친 일을 필두로 친척과 더불어 한 기생을 번갈아 탐하기도 했으며, 문종 치하에는
"술김에 사람을 자주 죽였다"라고 실록에 기록되어져 있기도 했다. 양녕대군의 27명의 자식 중 대부분이 이러했다고 하니.....좀 씁쓸해진다.
갑질은 조선시대에도 만연했구나...싶어져서.
아침 막장 드라마보다 더 경악할만한 사건도 있었는데 중종의 아픈 손가락 같은 딸인
효정옹주는 남편의 바람으로 인해 평생 마음 고생을 하다가 소리소문 없이 죽었던 것. 이 같은 비보를 해산한 딸에게 의원과 의녀를 보내면서 알게
되니 분노가 하늘에 닿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싶어진다. 왕의 딸과 결혼했으면서 그의 미움을 사는 부마라니....그런데도 왕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왕의 권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조선의 왕은 양반보다 그 힘이 미약했던 것도 아니면서...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막판의 끝은 효정옹주를 힘들게 했던 첩 풍가이를 상궁 은대가 납치해서 죽였는데 그녀는 효정 옹주의 이모였다고 했다. 사람을 죽였으니
국법으로 다스려야겠지만 그녀는 유배형이라는 제법 가벼운 처벌을 받았고 명종이 즉위하자 문정왕후에 의해 다시 궁으로 불러들여졌다.
지고지순한 여인과 나쁜 남편 그리고 그 사이의 안하무인격인 첩. 여인의 죽음과 가족의
복수까지...아침드라마 혹은 평일 7시대 저녁 일일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스토리가 이미 조선시대에 있었음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너무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라기보다는 사람 사는 곳에 있었을 법한 추문들이 예전부터 산재해 왔구나...라는 씁쓸함이 남았다. 분명 어느 역사
드라마에서도 본 적 없는 이야기들이긴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의 틀은 교과서 중심이었을 뿐임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되면서....좀 더 다양한
역사 읽기를 시도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된다. 자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