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정원이 딸린 넓은 다다미식 대저택...발걸음을 옮기는 곳곳에서 발견되는 얼굴없는 여자들...어느 여인은 팔이 없고 어떤 여자는 한쪽 다리가 없었으며, 심지어 머리가 없는 여자까지.....그들 모두 아버지가 만든 여자 즉 마네킹이었지만 마치 살아있는 여자들을 토막내어 놓은듯 기묘한 공포가 깃들여져 있다. 게다가 이 집은 아버지가 목매달아 자살한 집. 그 집으로 병약한 화가 아들이 돌아왔다. 그 아들의 눈에 비친 이 집은 그래서 따뜻한 추억이 담긴 가정이 아니라 벗어나고 싶은 무덤이 아니었을까.

 

더 괴기스러운 점은 피칠을 한 듯 물감을 뒤집어 쓰고 있는 얼굴 없는 그 여인들은 모두 사고로 죽은 그의 어머니 한 사람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그리움 대신 죄의식이 대체 되는 건 어머니의 죽음에 아들이 연관되어 있어서였다. 그는 어머니를 비롯한 몇몇을 죽였다. 철로에 돌멩이를 놓아둠으로써 열차의 탈선을 유도했고 그 사고로 다섯 명이 사망했다. 어머니를 포함해서.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그리움이 아니라 두려움일까. 아니면 무관심? 분명 추리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인형관의 살인>은 주인공의 감정선이 참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1953년생의 히류 소이치의 불행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그가 저택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마을에서는 나이 어린 소년들이 목졸려 죽기 시작했고 소이치에게도 협박편지가 도착했다. 누굴까? 왜? 지금 이 순간? 하필 나에게?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았을까. 소심하고 병약한 소이치라면.

 

p206   나는 기사코가 온몸으로 뿜어내는 싱싱한 '삶'의 빛에 끌리는 것이다

 

살인을 저지르는 누군가의 협박, 어두운 저택, 아버지가 늘어놓은 마네킹의 수수께끼, 엄마대신 엄마처럼 키워주었던 이모의 죽음...소이치는 그 하나하나를 풀어나가기 위해 고심하다가 집 안에 설치된 여섯 인형의 시선이 모두 한 곳에 집중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벚나무. 아버지 자신이 죽은 후에도 계속 지켜보게 만든 그 의도. 보물이라도 묻혀 있을까? 아님 시체라도? 짐작은 했지만 역시 관이 나왔고 마네킹이 묻혀 있었다. 엄마 대신.

 

하지만 추리 소설은 마지막 문장을 다 읽을 때까지 숨을 참고 끈기 있게 읽어내야만 하는 장르다. 언제 반전이라는 허에 찔릴지 모르니까. <인형관의 살인>도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의 머릿 속을 장악해 온 망상. 그로 인해 시작된 소설이었다. 허를 찔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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