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 - 후암동 골목 그 집 이야기
권희라.김종대 지음 / 리더스북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산모가 산고를 겪고도 그 고통을 다 잊고 다시 아이를 임신하고 싶어하듯 500일간 갖은 고생을 하고도 다시 집을 짓고 싶다는 부부는 그 모습이 참으로 닮았다. 학을 떼고 다시 집을 지으면 성을 간다~라고 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데도 말이다. 단순히 집을 구매하는 것과 집을 짓는 선택의 결과는 참 달랐다. 바닥재 하나하나, 문고리 하나하나를 직접 고르고 그 땅을 다지고 각종 서류를 떼고 건축법을 샅샅이 확인하며 지은 집에 담긴 애정은 남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집을 짓는다....막연히 해보고 싶다! 라고 머릿 속으로만 그려보던 그 일 뒤에 따르는 책임을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 듯 하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쉽게 입을 떼지 않으려고 한다.  남의 일처럼 펼쳤던 페이지인데 어느덧 나의 일처럼 읽혀진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팔기 위한 집'이 아니라 '삶을 담은 집'을 지은 부부의 이야기다. 그래서 저렴하게 집을 짓는 팁 위주의 책도, 멋진 인테리어에 관한 내용이 담긴 책도 아니었다. 생애 처음 집을 짓기로 마음 먹은 부부가 땅을 사고 도면을 그리고 공사를 시작하고 관공서를 들락거린 경험담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이다. 리얼이다. 우리가 집짓기를 마음먹었다면 고대로 수순 밟을 그 과정 그대로가 담겨 있어 생판 남의 이야기로만 읽을 수가 없었다.

 

 

>>>집이란 대체 뭐길래? 이렇게...

 

500일 동안이나 치열하게 고생해가며 고집스럽게 완성해냈을까. 그들이 원했던 집의 조건은 이러했다.

 

- 집값 걱정 없이 평생 살 집 / - 아이에게 "뛰지 마"소리치지 않아도 되는 집 / - 줄일수록 더 아름다운 집

-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불편하지 않은 집 / - 내 삶에 어울리는 맞춤집

 

결과만 보자면 그들은 이루어냈다. 지방이나 경기도가 아닌 in seoul 에서. 처음 신혼을 멋지게 시작했던 40평의 넓은 다가구 주택은 편리할 것 같았지만 도리어 무척이나 불편해 후회를 거듭했다고 한다. 신도시의 주택환경이 서울을 오가야하는 그들에게는 도리어 시간에 발목잡히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렇게 불편했던 신도시의 삶을 접고 40평이던 집을 18평으로 줄여 이사왔지만 지금 후암동의 집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4층 건물인데 방도 하나 뿐이다. 왜냐하면 딸아이의 방도 만들고 살림을 합친 부모님의 공간도 만들어드렸고 가족 모두의 공동 공간도 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의 방은 1개 뿐이지만 삼대가 모여사는 이 집이 더 행복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지금 내가 머물러 있는 집은 평생 살아갈 나의 집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공간으로 건축되어진 것이 아니라 이 집에 나의 동선을 맞추며 산다. 딱히 불편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이렇게 살아갈텐데,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을 읽으면서 갑자기 각성하게 되었다. 평생 만족감에 대한 고민도 없이 이렇게 어중간하게 집에 나를 맞추며 살다 죽는 사람들도 태반이지 않을까? 하고-.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일수도 있었구나! 라며-.

 

행복은 작다 크다 넓다 좁다가 아닌 '원하는 삶인가 아닌가'로 나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준 책이 바로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이었다. 물론 집을 짓는데 필요한 많은 지식들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값진 교훈은 바로 집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다. 지인들인 왜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을 거라며 그들을 말렸는지 알 것도 같았다. 돈 쓰고 스트레스받고-. 딱 싫은 그 과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내가 꿈꾸는 집을 짓고 싶어졌을까.

 

영화 프로듀서인 남편과 실내 건축디자이너인 아내가 만든 '디자인 하우스'(그들이 부르는 집명)는 '삶을 쾌적하게 디자인 해주는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지 몇시간 되지 않는 지금 당장은 사실 이 고생길로 들어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모를 때는 막연하게 상상만 했다면 약간이나마 간접 경험으로 녹록치 않음을 알게 된 지금은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지어진 집에 다시 나를 맞추며 사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불만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이러다가 정말 몇년 안에 집짓기를 시작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땅을 계약하는 과정부터 알아야 할 정보 투성이였다. 땅의 소유권 및 실제 건축 가능한 면적 확인, 지반에 대한 팁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땅을 계약해도 끝이 아니었다. 땅 값은 주인 맘대로 출렁이기 마련이고 공사시작과 명도 시기가 틀어질 수도 있다.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사를 나가면 끝인가? 그렇지도 않았다. 설계- 시공사 선정 - 건축비 책정 - 공사 계약서 체결 의 과정을 끝내야 겨우 시작을 할 수 있게 된다. 첫 삽을 뜨게 되면 모든 게 순탄한가? 고생의 문은 이제부터 열린다고 보면 되는데, 고사를 지내고 철거를 한 다음 토목 공사-골조공사-상량식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고 인테리어 공사-배관공사-외부마감-단열 창호공사-방수와 실리콘 공사를 하고도 끝이 아니었다. 내장-내부마감재공사-맞춤가구-부대토목공사 준공 검사- 그외 나머지 공사들을 마친 후에야 삼대는 후암동 주민이 될 수 있었다. 글로 간략히 나열했을 뿐인데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부부는 8월에 공사를 시작했다. 겨울 공사를 인내해야 했고 속쓰리게 가각전제(도로 교차지점의 모퉁이를 잘라내는 건축법)도 감행해야 했다. '원하는 삶, 바라는 집을 원했을' 뿐인데 인고의 세월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책은 [희-노-애-락]의 순서로 쓰여졌나보다.

 

집을 짓는 것으로 끝이났을까. 로망 하우스를 완성한 그들이 관리하며 그 집에서 살아가는 다음 이야기가 나는 더 궁금해졌다. 문득- 왠지 동화의 그 뒷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후암동 집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 책, 혹시 그 다음 권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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