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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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남은 사람보다 떠난 사람이 더 많은 이 고장의 개화한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라고 회고하고 있을만큼 그의 나이는 많아져 버렸다. 인생의 황혼기 '해질 무렵'으로 향해가고 있는 남자 박민우는 겉으로는 성공한 인생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 비슷비슷한 이웃들 사이에서 자라났지만 그는 건축을 전공했고 부잣집 딸과 결혼해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며 현재 건축일을 하며 강연을 다니고 있었다. 어느날 강연장 어딘가에서 누군가로부터 받은 쪽지에는 '차순아'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 주인공 박민우는 과거로 걸어들어가야만 했다. 

 

반대로 가족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 선택을 한 젊은 연극연출가 우희는 삶을 책임지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뛰어가며 고단한 오늘을 살고 있다. 스물도 아니고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은 없는 불안함이 깃들여져 있을 나이의 여인인 우희는 세번째 쯤 되는 남자친구 민우가 죽고 그의 어머니 '차순아'까지 죽어 버리자 그녀가 쓴 글들을 읽으며 또 다른 민우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그 민우는 민우어머니 차순아의 과거 속 남자이자 평생을 가슴에 묻은 첫사랑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희는 박민우에게 쪽지를 건냈다.

 

p129  사람의 기억이란 같은 상황을 경험해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무심히 잊거나 당시의 감정 상태에 따라 왜곡된 줄거리로 남아 제각각 다른 얘기를 할 때가 있다

 

군대 가기 전 하룻밤을 함께 보냈던 남녀의 기억은 달랐다. 자신의 환경때문에 사랑하는 남자를 잡지 못했던 순아에게 그날밤은 그리움이고 아픔이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밤이었을테지만 인생의 탄탄대로를 제안받은 민우에겐 바쁜 일상에 파묻혀 싹 잊혀져버렸던 하룻밤이었으며 그저 미안함이 약간 남아있을지 모를 정도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다르다. 같은 밤을 보낸 남녀의 기억이. 차순아가 죽고 그녀가 남긴 많은 양의 글들에 빠져지내며 순간순간 우희가 아닌 순아가 되어 박민우의 메일에 답장을 썼고 그에게 만나자고 제안을 했다. 마지막 장에서 그녀는 그를 만나러 나갔다. 하지만 차순아를 찾는 박민우의 눈에 우희라는 젊은 여인의 존재는 투명인간처럼 스쳐지나갔을테고 그는 결국 만나지 못한 옛 여인에 대한 궁금증이 남은 채로 다시 메일을 뒤적일지도 모른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비해 중년의 박민우의 기억은 애절하지도 간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덤덤하게 읽혀졌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상하리만큼 덤덤하게 읽혀졌다. 다만 나의 기억도 이러할까.....라는 의문만이 남겨진 채. 조금 더 나이가 채워진 후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고 말았다. 황석영 작가의 <해질 무렵>이라는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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