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벽 - 벽으로 말하는 열네 개의 작업 이야기
이원희.정은지 지음 / 지콜론북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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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무너졌다. '벽'이란 언제나 단절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열네 개의 작업 이야기가 수록된 <그리고 벽>을 보며 '관계'이며 '공간'이자 '가능성' 을 대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벽'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같은 공간이라도 누가 꾸미냐에 따라 인테리어의 느낌이 다르듯 벽 또한 그러했다. 활용하는 사람의 취향이나 직업 혹은 필요성에 따라 독특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 열네 개의 작업 이야기

 

페인터, 포토그래퍼, 쇼콜라티에,현대 자수가, 위빙 디자이너, 원예가, 식물 세밀화가...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멋지게 활용하고 있는 벽은 때로는 은밀한 작업장으로 때로는 방문객과 함께 즐기는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일반적인 벽면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은 쇼콜라디제이라는 이름으로 광화문에서 작업하고 있는 쇼콜라티에 이지연이었는데, 총 3개의 벽을 작업자의 공간, 손님과 함께 나누는 공간, 공간을 가리는 벽면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진만 보아도 익히 우리들이 알고 있는 평범한 공간이었다. 다만 서른 즈음 우울증을 겪었다는 그녀가 인용한 모리스 블랑쇼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를 상대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벽에 등을 대고 있어야 한다' 라는.

 

 

 

특이했던 벽은 자명종을 싫어한다는 아티스트 미미 정이 만들어내는 벽이었다. 직조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곡선의 벽은 아름다우면서도 독특했는데, 혼자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고 주인의식을 갖게 한다는 '벽'이 위빙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화제일지 몰랐기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중 가장 나와 비슷한 방식의 벽을 가진 사람을 꼽자면 페인터인 크리스틴 테세이라였는데 그녀는 모든 기억을 색으로 남기는 특색있는 사람이었다. 빈 벽에서 압박감을 느껴 빨리 덮게 된다는 그녀와 의미는 다르지만 내게도 벽은 즐거운 놀이터이자 채움의 공간이라 읽으면서 가장 공감이 많이 갔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실제로 나의 책상 앞 벽은 노란 포스트 잇이 은행잎처럼 가득 붙여져 있다. 머릿 속에서 빼내어진 생각들이 메모지에 옮겨져 붙여져 있는 것이다. 제 자리를 찾을 때까지는. 그래서 나의 벽은 잠시 머물러가는 정거장이기도 했다.

 

 

 

p30 관계는 돈독할수록 진중하고 얄팍할수록 간사하다 

 

 

 

온라인 서점 중에서 유명인들의 서재를 오픈하는 곳이 있다. 새로운 누군가의 소재가 소개될 때면 어김없이 들어가 보곤 했는데, 그 재미가 참 쏠쏠했다. 어떤 책들이 꽂혀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분류하고 어떤 디자인의 책장을 사용하고 있는지....나의 서재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궁금한 공간이 하나 더 늘어났다. 그들의 벽! 어떤 색감이며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소통하고 있을까. 닫아놓고 있을까. 등등 여러 모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 바로 '벽'이었던 것이다.

 

이제 어딜 가든 벽부터 보게 될 것 같다. 공간의 첫인상은 벽에서부터...아마 그렇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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