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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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분신을 본 사람은 머지않아 죽는다...빨리 따라 잡아서 하나로 합쳐야 한다.... p8

 

 

처음부터 밝혀놓고 시작한 이야기였다.

끝까지 다 읽고 다시 되돌아나와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이렇게 작가의 영리한 계산이 보인다. 다 알려주고 시작하는데도 보통의 독자들은 이야기의 수수께끼를 따라 궁금해하고 나름의 추리를 펼친다. <검은집>의 작가답다. 기시 유스케.

 

남자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공간은 물컹한 킹사이즈의 침대 위에서다. 미스터리나 서스펜스를 쓰는 소설가인 안자이 도모야의 야쓰가타케 남쪽 기슭에 있는 산장.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제 아내 유메코와 함께 도착한 듯 했고, 와인을 가지러 지하실에 다녀오겠다는 아내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산장 안에 벌들이 버글버글하다는 것을. 벌침은 처음보다 두 번째 쏘였을 때가 훨씬 더 위험하다 는 경고를 의사에서 들은 적 있는 안자이 도모야는 자신이 벌에 쏘였던 경험을 <소설가는 두 번 죽는다>라는 에세이로 쓴 적이 있다. 그런 그가 혼자 있는 산장 지하에는 장수말벌이, 천장에는 노랑말벌들이 가득하다. 아내일까.. 그가 죽기를 바래 벌들을 풀어놓은 사람은...

 

눈 내리는 날, 인터넷도, 팩스도, 전화도 차단된 밀폐된 공간인 산장 속에서 벌과 사투를 벌이는 인간의 모습은 처절했다. 헤어스프레이, 바리산, 와인, 소화기....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이용해가며 살아남기 위해 그는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예전 작품들의 내용을 맥가이버처럼 되새김질해가면서 -.

 

아, 하지만 결말까지 다 읽고나면 이 부분 역시 교묘한 훼이크였음을 발견하게 되고 작가의 노련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동안 집요하리만큼 계속 되어오던 전작들에 대한 내용이 말벌을 퇴치하기 위한 최선인 동시에 스스로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한 되새김질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그만 그 반전에 박수를 치고 말았다.

 

누가 그랬을까.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는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르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누구냐, 너는!!!' 이라는 충격 앞에 더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될테니까.

 

<검은집>,<푸른 불꽃>,<13번째 인격>...의 공포는 잊어도 좋다. <말벌>에서는.

대신 끊임없이 조마조마하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이 가득찰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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