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긋는 소녀 - 샤프 오브젝트
길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푸른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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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언 플린의 소설 중에서 가장 밋밋하게 읽은 작품이 무엇인지 꼽으라면 <몸을 긋는 소녀>를 선택하겠다. 물론 이 이야기 역시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2006년 데뷔작으로 CWA 스틸 대거상과 뉴 블러드 대거상을 동시에 수상한 책이면서 영리하게 쓰여졌다. 하지만 이후 더 노련한 솜씨로 집필한 <나를 찾아줘>와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나는 언제나 옳다>를 먼저 읽어버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작인 <몸을 긋는 소녀>는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비교될 수 밖에 없었다.

 

완벽한 이야기꾼,,,

 

10년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 평론가로 활동해 왔던 그녀가 무섭게 써 내는 소설들은 허를 찌르면서 궁금증을 폭발 시킨다. 여자작가 특유의 섬세함이나 달달함은 머릿 속에 자리잡을 틈도 없다. 그녀의 소설에 몰두하는 동안 작가가 여자인지, 커리어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작이 무엇인지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린 채 이야기의 길로 무섭게 내달리기 바쁘다. 독자를 LTE급 가속력으로 밀어붙이는 이야기는 때로는 잔인하게, 때로는 흥미롭게 또 때로는 처참하게 풀어지다가도 어느 순간이 오면 방향을 체인지 시키거나 결말만을 위한 화해로 인도하지 않아 좋았다.

 

무궁무진한 이야기 보따리를 등에 지고 나타난 노련한 이야기꾼처럼 그녀는 완벽했다.

 

 

 

나도 그 애들처럼 살해됐으면 좋겠어 그럼 완벽하게 사랑받을 수 있잖아....

 

라니. 어떻게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지? 길리언 플린의 이야기 속 등장 인물들은 어딘지 모르게 일반적이지 않았다. <나를 찾아줘>에서도 바람핀 남편에 대한 복수로 그를 자신의 살해범으로 만들 생각을 했던 마누라가 등장하더니 <몸을 긋는 소녀>에서도 특이한 정신상태의 인물들이 등장했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 여자는 엄마, 언니 그리고 여동생이다. 그녀 스스로도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했음을 군데군데에서 시사했던 엄마(아도라)는 모정이 깊지도 않으면서 일부러 아이를 아프게 만들어 보살피는 역할을 자처한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의도대로 행동한 딸(메리언)은 죽었고 제맘같지 않던 딸(카밀)은 멀리 떠났다.

 

 남보다 못한 가족관계로 이어져왔던 카밀 역시 엄마로부터 벗어났지만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진 못했다. 남모르게 자신의 몸에 단어를 새기는 자해를 하면서 살아왔던 그녀에게 고통은 살아가기 위한 도구였을까. 아니면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P13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시카고에서 네번째 가는 신문인 <데일리 포스트>에 글을 기고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던 카밀에게 편집장은 두 건의 소녀 살해사건을 디밀면서 고향에 다녀오라고 일감을 던져준다. 가고 싶지 않은 곳, 보고싶지 않은 가족이 머무는 땅. 12년 만에 취재를 위해 다시 방문한 고향은 불편한 시선 투성이였다. 얼마나 후회하고 또 후회했을까. 하지만 와버렸고, 취재가 끝나기 전까지는 돌아갈 수도 없다.

 

불편한 사람을 만나는 일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일.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힘든 일일까.

 

그 옛날 여동생을 살해하고 윈드 갭 마을의 소녀들을 살해한 살해범으로 엄마 아도라가 지목되었으나 다시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카밀은 엠마의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침대, 의자, 책상 그리고 인형의 집까지...결국 56개의 표백된 치아를 발견했을 때, 그녀의 머릿속으론 어떤 생각들이 지나쳐 갔을까. 정말 독 맛을  본 아이는 남을 해치는 일이 위안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정말 끝내주게 지독한 모녀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 모녀관계는.

하지만 마지막에는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사실만 남았다. 그래서 슬프게 느껴지거나 잔혹한 잔재가 남지는 않았다. 마음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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