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 소녀
박정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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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라는 시기는 감성이 충만할 시기다. 평범하게 가정의 울타리에서 특별한 고비 없이 성장해도 그 화산같이 불뚝불뚝 솟는 호르몬 조절이 쉽지 않아 감정선이 지옥과 천당을 오르는 바로 그 시기. 그런데 소설 속 소녀들은 하나 같이 신체적으로 훼손되고 정신적으로 상처받지만 특이하게도 모두 울부짖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복수하거나 남의 일처럼 제 몸에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포기도 아니고 극복도 아닌 이상한 상태. 아프지만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하지도 않으며 그 시기를 거부하거나 뛰어넘고자 하지도 않는다. 받아들이는가? 하면 그것 역시 아니다. 애매모한 감정적 상태에서 고통을 그저 응시하고 있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듯 하다.

 

보통 소설에서 인물에 상처를 입히는 배경으로 시대적 배경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사람의 선택을 가져올때가 많은데 이 소설에서 소녀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성인들의 목적이나 그 배경은 어쩔 수 없음에 있지 않다. 시대적인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약자인 소녀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양심에 가책을 받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상태가 가장 리얼하게 느껴지면서도 어떤 관점에서는 가장 무섭게 느껴진다. 어느쪽이든 감정선이 메마른 것 같아서.

 

여성이나 아이를 상대로 한 폭력을 소설이나 영화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언제나 용서할 수 없는,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앞서곤 했는데 작가 박정윤의 단편소설을 연결해서 읽는 동안에는 신기하게도 그저 고요하게 읽혀졌다. 묘하게 묵묵히 지켜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 역시 작가의 의도일까 할 정도로 감정을 몰아가지 않아서 다 읽고나서 고요하게 분노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총 9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서 만난 소녀들은 고통속에 던져졌다. <초능력소녀>부터 <목공소녀>까지 읽으면서는 그녀들에게 그 어떤 위로도 주어지지 않는듯하여 혼란스러웠고 아프다아프다 보채지 않는 소녀들의 상처가 쓰라리게 느껴졌다. 다만 사회도 어른도 그들에게 울타리나 보호막이 되어주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화가나기 보다는 체념이 앞섰고 한숨이 먼저 쉬어졌다는 것이 좀 특이했다면 특이했달까.

 

대표제목이어서 기대했던 <목공소녀>보다 처음 읽은 <초능력소녀>쪽이 훨씬 더 강렬했는데 몸이 붙어 태어난 쌍둥이 '화'와 '수'가 같은 시각 각각의 장소에서 성폭행을 당했지만 낳은 부모도 기른 월미할미도 소녀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고 그녀들의 곁을 떠나기 바빴던 점. 결국 수가 죽고 수의 몸 속 독을 받아 그 독을 섹스를 매개체로 하여 남자들엑 퍼뜨리는 인간 바이러스가 되고 만 '화'. 이 이야기를 읽고나는 내 표정이 돌연 궁금해졌더랬다. 대체 이 복잡한 감정 속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인 것일까.

 

그래서 <목공소녀>를 읽으려는 사람들에겐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는 이야기 한 편을 읽고나서 꼭 거울을 한 번 보기를 권하고 싶어졌다. 표정에 그 미묘한 심정이 담겨져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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