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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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 소설은 언제나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만다. 누군가의 욕망에 의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사회적 부조리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해자들조차 그 사연을 들어보면 안쓰러워질 때가 많다. 한동안 고전물만 번역되는가 싶더니 드디어 고대하던 미야베 미유키의 현대물을 한 권 손에 쥐게 되었다. <화차>,<모방범>,<이름 없는 독>,<스나크 사냥> 이후 미미여사의 현대물을 고대하던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신간의 등장을 보게 된 동시에.

 

 

 

 

 

 

" 저는 다만, 그 세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을 뿐입니다"    p 136

 

 

 

 

 

 

재벌가의 데릴 사위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남자 스기무라 사부로. 그는 <누군가>,<이름 없는 독>을 통해 사건을 겪어가며 자신에게 가장 맞는 일이 무엇인지 인지하기에 이르른다. 앞장서서 나서지는 않지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으며 경거망동하거나 수다스럽지 않은 남자. 평소에는 소심한 듯 사람들 사이에 묻혀 있는 그는 실제로는 눈에 잘 띄는 타입이 아닌 평범한 사내지만 위기에 처하면 그 꼼꼼함과 양쪽을 잘 조율할 있는 그 능력이 빛을 발하는 그런 타입니다. 외모가 후지거나 뛰어나거나 해서 눈에 확 들어옴과 동시에 빠른 추리력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기존의 탐정들과는 다른 유형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친근하게 함께 풀어나가듯 읽을 수 있게 돕는 탐정이 바로 이 스기무라.

 

 

 

 

 

 

그룹의 유배지로 인식되어진 사보편찬 부서에서 부편집장으로 근무 중인 그는 못됐다 싶을만큼 깐깐한 편집장과 함께 인터뷰를 다녀오던 중 버스 납치 사건의 인질이 되어 버렸다. 70대 노인이 원한 것은 세 사람의 이름과 그들을 불러다 주는 것. 하지만 경찰이 그들을 데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던 노인의 진짜 목적은 그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져 그 죄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경찰이 진압을 위해 버스에 진입했을때 자살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에서 거짓말처럼 약속했던 위로금이 각자에게 전달 되었고 그 멤버는 다시 모여 돈의 출처와 사용을 두고 의견을 달리 한다. 그리고 버스에서 이성적으로 대처했던 스기무라가 이번에도 그 할아버지 납치범의 정체와 돈의 출처를 알아보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1943년 8월 생인 구레키 가즈미쓰라는 이름도 가짜. 과거 전전했던 직업도 여러 개. 건장한 남자들을 말로써 제압하던 그 말솜씨에 대한 의문까지 더해져 노인의 과거는 더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통찰력이 뛰어난 스기무라의 장인은 노인이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에 걸쳐진 일본의 고도 성장기에 붐을 일으켰던 st의 트레이너가 아닐까 라는 힌트를 던져주게 되고 실제로 그는 친척에 의해 가족이 몰살 당해 고아로 자라야했던 외로운 사람이자 다단계 기업의 트레이너로 활동했던 사람임이 서서히 밝혀져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하다 마쓰아키로 태어나 자란 그는 은퇴 후 낚시하러 갔다가 죽음을 경험하고나서는 자신이 번 돈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죽음에 다달았을때 수면 위로 떠오른 양심과 죄책감이 조직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한정된 인원만 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자각이 없는 사람들까지 몽땅 책임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한 목숨을 내던졌던 것이다.

 

 

 

"이 사람들은 내가 간 밭에 돋아난 나쁜 싹이야.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해" p692

 

 

범죄를 겪고나면 누구든 어떤 방식이든 피해를 입게 된다. 그 트라우마가 남겨지기 때문에. 외상은 금방 회복되지만 뇌에 각인되고 마음이 찢겨진 상처는 평생을 함께 한다. 그래서일까. 버스에 탑승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이전의 삶으로 복귀하지 못했고 주인공인 스기무라 역시 이러저러한 일들로 인해 결국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어른으로 성숙하는 그 성숙도가 깊어질거라는 착각은 10대때나 하는 것이리라. 치열하게 20대를 살아도, 원하는 것을 30대에 다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도 어린 시절 생각했던 것만큼 어른이 되어 있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길게 살아보진 않았지만 40대, 50대, 60대가 되어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되어진다. 어쩌면 '어른의 성숙함'이란 인간에게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이상향의 나이테'가 아닐까. 엉뚱하게도 나는 사회범죄 소설인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어버렸다.

 

인간의 사소한 욕망을 노리는 인간들이 싫었다고 한국의 독자 인터뷰단에게 고백했던 작가의 집필 의도를 미리 알고 읽기 시작한 작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게 이 소설은 길고 두껍지만 그 무거움의 무게가 여느 소설과는 달랐던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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