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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문고는 어디에 : 문화방송 녹취록 사건을 파헤치며 - 왕초보의 대한민국 검찰문화 입문기
조정윤 지음 / 가나북스 / 2015년 7월
평점 :
법을 잘 지키며 딱지 한번 안 끊기고 살아왔는데 막상 억울하게 법 앞에 섰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였다.
관련 서류를 떼러 다닐때마다 죄 지은 놈은 따로 있는데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 쪽이 공무원들의 불친절함을 다 받아내야만 했고 두 번, 세 번
출두하고 관공서를 뛰어다니면서 길바닥에 차비를 수차례 뿌려대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했던 것은 단 하나. 나의 억울함을,
마음 속 불붙은 울화를 바닥으로 꺼내리는 일이었다.
p11 법이 결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식이며 도덕이며 윤리 안에
있다면
그렇게 알고 살아왔는데 단단히 뒤통수 맞았다. 물론 재판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그 고생에 고생을 다하면서도 진실 앞에 서고자 했던 개인이
얻어낸 것은 너덜너덜해진 신체와 정신이었다. 죄 지은 놈은 나라의 돈까지 받아가며 돈을 펑펑 쓰면서도 '돈 없어서 못내겠다' 이런 소리나 하고
있었으니. 시민으로써 냈던 세금이 아깝게 느껴지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나처럼 멀리 있던 법에 단단히 뒤통수 맞은 사람이 저자였다.
문학박사로, 대학강의로 그 뼈를 굳혀 왔던 저자에게 법은 국민을 수호하는 단단한 울타리였을 것이다. 이 일을 겪기 전까지는.
사법 피해자에 대한 구조없는 헌법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몰아가는지....억울함이 가슴 저 끝까지 미세핏줄처럼 퍼져나가 사람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60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비의료인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고발을 받고 2011년
6월 사법 사건의 당사자가 된 저자는 뉴스에서도 들은 바 있는 '사무장 병원' 을 개원했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 수사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사건의 시작은 이랬다. 2010년 건물주가 건평 900여평의 9층 건물을 매입하여 임대하려 할때 가장 많은 문의가 들어왔던 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이었다고 했다. 장기 임대 및 높은 임대료를 제시하는 곳이 많아 상담 전화가 빗발쳤는데 그때 안과 수술 후 강의를 쉬고 있던 저자가 상담
전화를 돕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보물 제작을 맡아 10여개 월의 시간을 임대 계약 주선에 힘썼는데 그 와중에 여중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50년 만에 동창 심씨를 만나게 된다. 독신으로 38년을 의사생활을 해온 동창이 관심을 보이자 그동안 임대의 의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보여왔던
정신과 전문의 병원장보다는 팔을 안으로 굽혀 동창에게 임대하기로 하고 대신 인테리어 비용을 조율하고 병원 장비들을 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개원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동창에게 계속 독촉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반대로 자신은 업자들의 독촉에 시달리다가 먼저 돈을 좀
빌려서라도 개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친구의 말만 믿고 투자하게 되었던 것. 그리고 그 선택이 족쇄가 되어 그녀의 인생을 흔들어 놓았다.
진정 사건 588번의 피의자.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법적인 서류에서 그녀는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딱 1달간 청구업무를 하다가 너무 일을
못해 퇴사를 권고받자 우러급 석달분과 이사비를 내어놓으라고 협박했던 권모씨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해당 병원을 사무장 병원으로
고발했던 것. 비슷한 혐의를 받았던 병원들과 달리 해당 병원은 함정 수사에 표적이 된 것처럼 결론을 내려놓고 윽박지르며 수사가 진행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억울하지만 빠른 종결을 위해 권모씨에게 3천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이 좋겠다는 변호사의 권고를 받아들여 거금을 울며 겨자먹기로
건냈다고 했다. 이런 경우가 또 어디 있을까. 법으로 그 무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낼 수가 없다니...아무리 대한민국 헌법이 완벽할 수 없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mbc방송 녹취록 사건이 터지면서 수사관과 권모씨가 짜고치는 고스톱격으로 법을 갖고 놀면서 돈을 노리고 한 행위들임에 전국민
앞에 밝혀졌지만 비리 수사관만 파면 되었을 뿐 검찰은 이 일을 쉬쉬하며 덮기에 급급했다고 하니.. 법이 사람을 지키는 데 쓰이지 않고 밥줄을
지키는 데 쓰인 것만 같아 씁쓸해질 뿐이었다.
건물의 임대만 도우려했을 뿐인데.....자금력 없는 친구를 대신해 그 사정을 좀 바줬을 뿐인데 그녀는 법정에 출두해야했고 감금 당해야했고
결국 그 억울함을 100% 털어낼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나같으면 홧병으로 몹쓸병에 걸리거나 그만 죽어버리지 않았을까 싶어지는
대목이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기꾼들이 존재한다. 돈이 있건 없건 그들과 엮이는 일 없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목표인 나는 이 사건을 책으로
읽으며 내가 겪은 일은 새 발의 피였을 뿐이구나. 이 사건에서도 내 사건에서도 고의적으로 상대를 피말리는 일은 나쁘다 하겠으나 나는 비교적
그래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그 사건이 종결지어졌구나 싶어 도리어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