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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예쁘다 - 육아의 블랙홀에 빠진 엄마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김미나 지음 / 지식너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이 커플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외고와 명문대를 나와 잘나가는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중 사내연애를 했다고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는
'알음알음' 김미나씨. 그 안정된 직장을 결혼 1년 만에 둘 다 확 그만둬 버리고 세계여행을 9개월간 갔다 왔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그
주인공이 어마어마한 재력가였다는데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 부부의 결단은 얼마나 용감한 것이었는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돌아와도 보장된
것은 없었고 9개월 내내 '이혼'이 언급될 정도로 처절하게 싸우고 돌아왔단다. 그래서였을까. 살면서 싸울 기력을 초장에 다 소비해버려서인지 이들
부부 아주 평범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정도 멋지게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왜 책을 내지 않았던 것일까. 신혼 1년차 부부가
그것도 회사까지 사표쓰고 여행을 몇달간 갔다올 그런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말이다.
p11 엄마가 되고 나서, 나의 모든 단어 사전은 새롭게
쓰여졌다
얼마후 재취업이 된 남편과 달리 경력이 단절되어버린 저자는 그 시간동안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했고 책/영화/드라마 등 문화 전
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100% 활용하여 블로그에 좋은 글들을 올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2년 터울의 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많이
배웠다고 많이 경험했다고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그녀의 책을 보며 깨닫는다. 똑같다. 모든 엄마들에게 주어지는 환경은! 그 속에서
얼마나 배워나갈 수 있는지만 다를 뿐.
소설가 공지영의 책 속 말을 빌어 그녀는 육아의 힘듦을 토로해 놓은 페이지가 있다. '엄마는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고도 아이를 어딘가
이상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 개념 없는 엄마들이 공공장소에게 제 아이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찰때가
있는데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속으로 찜찜한 건 내가 아직 엄마가 되어 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다. 머리로는 캐스린
포브즈의 <엄마의 은행통장>의 엄마처럼 매순간 현명한 선택을 하고 싶지만 감정선이 위~아래~로 제멋대로인 나를 잘 알기 때문에
폭발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잘 말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사실은.
반려동물과 살면서도 화를 낼 경우가 생기는데 반려동물이나 아기들이나 대화 소통에 장벽이 있는 것은 매한가지. 남의 아이를 가르쳐보았지 내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미스터리한 시간은 내게 sf의 공간일 수 밖에 없다. 만약 두 아이를 키워낸 내 친구가 이 책을 읽었다면
주마등처럼 스쳐갈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육아를 경험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저자의 체험담은 각자에게 유용하게 읽히는
팁일 수 밖에 없다. 키워본 쪽도 자신의 아이를 키워낸 방법 외엔 모르고 키워보지 않은 쪽은 더더군다나 방법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쏠쏠할 수 밖에.
p269 지금의 나를 정말 나답게 해준,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들
친구 j에게 인생의 현명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된 것도 다 두 아이를 길러낸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 부분에서 나는 다시 내
현명한 친구가 떠올려졌는데, 같은 나이이며 같은 세대를 대한민국에서 함께 겪으며 살아왔다고 해도 살아온 방식이 다르면 내공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저자가 j에게 인생의 팁을 충고하듯 나 역시 내 친구에게 언제나 정신과 상담보다 더 좋은 힐링을 받아내고 있으니까.
그녀의 고백처럼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얼마나 어려우면 아이 하나를 제대로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을까.
'미친 탱탱볼'이라 불리는 둘째와 섬세하고 예민한 언어를 구사한다든 첫째를 보며 오늘도 그 추억들을 글로 담고 있을지 모를 저자의 힐링 에세이는
친한친구의 멋진 상담처럼 행복감을 선사한다. 전문가가 불라불라하는 어려운 용어도 없고 그저 담담하게 쓰여진 육아서를 다시 꺼내볼 때 즈음에는 나
역시 엄마가 되어 있을까? 하지만 이 모든 순서의 앞은 먼저 결혼이다. 그래, 결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