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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쓰기 - 공지영, 정유정, 정이현 외 11명 대표작가 창작코멘터리
이명랑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4월
평점 :
p91 정유정 작가 : 이야기는 저절로, 굴러가는 대로 만들면 안되나요? 이야기의
목적에 맞게 가야 돼요.
에피소드와 사건의 차이를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며 그 두 가지를 적절하게 잘 버무려야 좋은 장편의 스토리가 짜여진다고 조언하는
작가는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작가다. 그녀의 초기작부터 최근 히말라야 환상방황을 제외한 모든 책들을 구해다 읽었던 나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인터뷰였다.
p108 명지현 작가 : 단편 세 편을 같이
쓰라고요
반대로 체구가 작고 폐경기가 가까운 여성은 김치를 많이 먹으면 뼈마디에 습이 차서 관절염에 잘 걸린다고 소설 속에 풀어놓은 <교군의
맛>을 쓴 명지현 작가의 책은 일절 읽어본 일이 없다. 자칭 타칭 글자중독인 나 역시 편식글읽기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세상 모든 작가의
글을 다 읽고 살 팔자는 안되다보니 뭐 다 읽을 순 없다고 쳐도 적어도 여기에 실린 11명의 작가들의 책은 읽고 살아야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반성에 반성을 더해 본다. 글을 읽은 적이 없어서 그런가 인터뷰를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이 작가 사람으로서도 여자로서도 참
재미난 사람인 듯 싶어진다. 교통편이 좋지 않은 동네 살면서 텃밭도 가꾸고 개도 산책시키면서 딸들의 통학도 도맡아 하는데 글 쓸 시간이 어디에
나나? 싶었더니 하루 24시간 중 딱 4시간이 빈단다. 물론 마트에 가고 도서관 가고 집안일 해야하는 시간까지 통합해서 총 4시간.
빠듯했을텐데....4천매의 분량을 초벌로 써놓고 그 글을 축약했다고 하니....이 사람의 근성도 대단하다 싶어졌다.
월남전을 바라보는 시선도 남다르다. 미국에서 저지른 별 의미도 없는 우격다짐의 전쟁 속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잃었노라고 말했다.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가 저지른 합법적인 폭력이면서 폭력을 파생시키는 상징을 가지고 있다고. 문학은 자신의 것으로 쓰는 것이며, 때가 꼬질꼬질 묻은 이야기를
써야한다고 말하는 작가의 글. 아주 궁금해져서 조만간 싹 다 찾아 읽어보게 될 듯 싶다.
인터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흡인력이 대단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데, 한 사람이 쓴 작법서보다 더 큰 폭발력을 가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책 한 권의 분량을 써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대목대목에서의 고뇌와 선택, 알짜배기 실제적인 이야기짜기는 그럴듯하게
헤드라인을 뽑아놓고 가르치듯 쓴 작법서들과 정말 차별화 되어 머릿 속에 쏙쏙 박힌다. 제 손으로 짧은 글이라도 한 편 써본 이라면 11인의
작가들이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양질의 것인지 알 수 있으리라.
p208 구효서 작가 : 한 권의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감기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
<비밀의 문>을 읽으면서 시작된 작가의 책읽기는 <랩소디 인 베를린>에서 딱 멈추어 버렸다. 하지만 인터뷰를 읽다보니
<동주>도 읽고 싶어진다. 장편을 쓸 때 체력을 염두에 두고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동안 감기조차 걸리지 않게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하는 작가여서인지 그의 글엔 빈틈이 없다. 그래서 교수님의 강의를 듣듯 진지하게 읽어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그와 저자의 인터뷰는.
p259 심윤경 작가 : 하나의 원칙이라면 초고에서 20%는 볼륨을
줄여요
소설가는 별게 아니었단다. 드라마도 배우고 출판사 직원으로도 근무하면서 인생을 배우면서 글에 녹여보려던 그녀가 깨달은 바는 '결국엔 내가
써야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뭘 쓸 건지 생각만 해서는 절대로 되지 않으며 자판을 똑똑 두드려 쓰다보면 소설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쓰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가 지망생들에게 등떠밀어주는 조언 중 이보다 더 좋은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p292 공지영 작가 :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할 필요 없어요. 작가가 의식해야 하는
건, 내가 느낀 충격과 공포와
이 분노를 너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이 외에는 다른 사람을 의식해선 안
돼요.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권위적으로도 패배했다는 <도가니>의 실제 사건의 판결은 다시 소설화되고 영화화되면서 양심의 심판대를
전국민 앞에 세우는 역할을 해냈다. 원래도 강체였던 필력의 공지영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어서 나는 그녀가 좀 더 사회화 소설을
써주기를 기대하고 고대한다. 같은 이야기를 두고도 더 힘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 후각과 시각과 촉각을 자극하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으므로. 그래서인지 한 군데도 버릴 데가 없었던 그녀 파트의 페이지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이야기가 인류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과 소설이 다른 모든 경쟁들을 압도하는 건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11인의 작가는 모두 훌륭한 작가들이었다. 그 중 나와 코드가 맞고 안맞고는 나중의 문제다. 쓰라고 들이밀면 a4 한 장도 빽빽히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세상속에서 2000매를 쓰고 4000매를 써 내려간다는 것은 왠만한 지구력 없이는 하기 힘든 고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쓴 소수의 사람들 중에서도 이름을 독자의 귓가에 날릴만큼 멋진 글을 완성한 사람들이기에 나는 이 모두에게 박수 백만번을 보태고
싶어졌다. 또 한 사람. 어쩌면 읽는 동안 잊혀져버리기 쉬울지도 모르는 인터뷰어인 저자 역시 그들의 좋은 생각들을 알알이 모아 독자 앞에
내어놓았으므로 함께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좋은 글을 선물받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