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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 - 익숙해서 상처인 줄 몰랐던 말들을 바꾸는 시간
데보라 태넌 지음, 김고명 옮김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가족끼리 왜이래'라는 드라마가 종영되었다. 주말 8시대 드라마였기에 그 타깃은 '가족 모두'를 향해 있고 내용은 '화해와 따뜻한 감성'을
지향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 드라마 속에서 무엇보다 맘에 쏘옥 들었던 건 바로 그 제목이었다. 가족끼리 왜 이래라니. 어쩌면 다
이해해야한다는 둥그스름한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제목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가족인데 왜 서로에게 이러는 것일까 라는
의문의 시작. 문제점의 지적.
대가족-핵가족 -1인가족/쉐어가족/독립가족 등등 비교적 짧은 시기에 대한민국은 국가의 시초가 되는 가정의 구성원에서부터 많은 변모를
겪어왔다. 십여년전만 해도 대발이 아빠가 등장하는 가부장적인 드라마를 보며 웃으면서도 저런 집 많아 했었지만 요즘 세태와는 또 맞지 않을만큼
가정 속에서부터의 삶은 빠르게 변화되어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가정은 여전히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비슷비슷해 보이던 학창시절을 지나 20살이 되고 보니 참 다양한 가정사 속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섞여 사회라는 것을 이루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친구들의 좁은 우물같은 지역을 한 발자국만 벗어났을 뿐인데 혼돈스러웠고 어수선했다. 각자의 가치관과 바르다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 이토록
큰 생각의 차이를 만들어낼 줄 몰라서 더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그때 참 많은 가정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깨닫게 된 건, 어느
가정이나 들여다보면 문제가 없는 집안 걱정이 없는 집안이 없다는 거다. 그 범위와 깊이를 제쳐 두고라도.
참 밝게 웃던 '그녀'는 해외여행도 씩씩하게 다녀오고 회사일도 적극적으로 할만큼 입사초부터 눈에 띄이던 사원이었는데 좀 친해지고 나서
알게된 가정사는 가히 충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주변에서는 보지 못했을만큼 폭력적인 가장이 있는 집. 그래서 고향집에는 좀처럼 가고 싶지
않아 명절 언저리엔 항상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남동생이 제대하고 온 날 아버지는 식구들이 함께 저녁식사하는 자리에서
병을 깨어 엄마의 눈을 찔러 버렸단다. 그 직원의 급한 휴가를 승인하고 처리해주면서 그 겉면의 밝음과 달리 속으로는 수없이 멍들고 문드러졌을
'그녀'의 어린 시절이 상상되어져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가족의 말 한마디, 알아주지 않는 태도등으로 인해
가슴쓰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인정 받고 싶은 욕망, 편안하게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버린지 오래된 나 역시 가족의 한마디에
상처받을 때가 종종 있을 정도이니. 보통의 가정 속에서 서로를 긁고 울분을 토하고 원망하는 일들은 소소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가장 문제는 역시 '널 사랑해서 한 말이야'라는 단서가 덧붙을 때 일 것이다. '가족이니까 그런 얘길 하는 거지'라니. 그 역시 말하는
이의 입장에서 내뱉는 자기 합리화일뿐이고. 가족이라고 해서 함부로 조언하고 상처줄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익숙해서 상처인 줄로 몰랐던 말들을
서로 반성하는 시간을 데보라 태넌의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를 읽으며 시작해 보면 어떨까.
가족간에도 서로 지켜야하는 거리와 룰이 있다. 알맞는 대화법이 있다. 남도 가족도 안보고 살면 똑같이 남이다. 누구편 이라고 유치하게
편가를 필요도 없고 아픈 곳을 콕 찝어서 평생의 생채기를 낼 필요도 없다. '미안해 됐지?"라는 영혼없는 사과에 기분나빠하는 것은 가족이라 해도
매한가지. 가족내에서도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성숙된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p323 해법은 있다
희망을 주는 이 메시지는 책의 제일 후미에 등장한다. 수년을 함께 살아도 같은 가정내에서 성장해도 서로 다르게 자라나는 것이 사람이다.
대화의 양식도 다르고 판단의 기준도 다르다. 그 점을 인정하고 서로간의 적당한 거리를 찾아낸다면 가족 역시 이전보다는 훨씬 편안한 사이가 되어
좀 더 자주 보며 웃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가시 같은 대화가 아닌 연고 같은 대화를 나누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