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늦은 밤,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가 그만 폭탄을 맞고 말았다. 안그래도 출출하던 참이었는데 멈춘 화면 속에서 '지글지글' 거리던 소리가 KTX급으로 고막을 뚫고 손쌀같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케이블 채널인 [먹방쇼의 전설]에서는 달달한 양념 치킨들이 지나가고, 그 튀기는 기름 소리 자체가 고문인 후라이드 치킨도 지나갔다. 그때 저 멀리 속초에서 유명하다는 강정이 배달되어 패널들이 맛나게 즐기는 모습에서 그만 무릎을 꿇고 수화기를 들고 말았다. '치킨 주문하면 얼마나 걸려요?'

 

대한민국 땅에서 치맥의 유혹을 떨치기란 쉽지 않다. 된장, 김치찌개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듯이 치킨은 사흘이 멀다하고 손쉽게 주식처럼 주문하게 된다. 맛도 양념, 후라이드만 있던 시절을 지나 간장, 붉닭, 훈제 닭 등등 여러 종류의 맛이 있고 두 마리, 반반은 고유명사처럼 입에 착착 붙는다.

 

이런 치킨들을 우리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예전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에서는 닭이라는 재료를 두고 할머니는 백숙을 손자는 후라이드를 동시에 떠올리던 장면이 나온다. 개인에 따라 나이에 따라 선호하는 그 맛이 다르지만 그 재료는 똑같은 치킨=닭이다. 할머니와 손자의 추억거리가 된 영화 속 백숙은 비록 세대차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치킨은 '한국인의 소울 푸드'로 불릴만큼 국제 시장급 세대공감 요리다.

 

드라마 1994에서도 등장하듯 월드컵, 축구 경기를 관람할 땐 치맥이 빠질 수 없고 소풍과 운동회날에도 빠지면 서운해진다. 축제의 음식이었던 귀한 치킨이 생활의 음식이 되어 우리 곁에 자리 잡았다. 농업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는 치킨의 레시피가 아닌 역사와 유통에 주목했다. 그 귀한 닭들이 대량으로 유통되는 그 이면에는 독점되다시피한 양계기업의 수직화가 한 몫을 하고 있고 농민의 눈물만큼이나 절절한 양계 농민의 괴로운 처지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최종 소비자의 입장에서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최초 생산자의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를 멈출 수 없는 것은 이미 길들여진 입맛 때문이지 싶다.

 

모르고 먹는 것과 알고 먹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시원하게 날리는 저자의 돌직구만큼이나 시원하고 통쾌했던 진실들. 물론 서글프고 안타까운 부분들도 있고 당장 변하기 어려운 현실도 직시가 되지만, 전국민의 마음을 홀딱 훔친 '치킨'이 이토록 사랑받는 만큼이나 그 제반의 환경들이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그래서 다음에는 저자가 대한민국 치킨전이 아닌 세계를 사로잡은 대한민국의 치킨이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하는 날이 오기를 상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