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름을 삼킨 소녀 ㅣ 스토리콜렉터 2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밤이 왔다. 전체 인생을 두고 볼때 십대 소녀의 계절은 봄이다. 사계절의 의미를 아직은 잘 모를 그저 파릇파릇해야하는 그런 이른 봄.
하지만 소녀는 '여름을 삼킨 소녀'로 불릴 만큼 많은 것을 알아 버렸다. 소녀의 계절은 이미 여름이며 시간은 밤이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아들만 넷인 그랜트가에 막내로 입양된 셰리든은 십대소녀다. 1994년 미국 네브라스카 주 페어필드는 주민이 1500명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누가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네 집 포크가 몇 개더라 할만한 비밀이 없는 동네. 문화적, 사회적 생활의 대부분이 교회에서 결정되는
소박하고 평화로워보이지만 안으로는 지루하고 답답한 그런 동네. 운 좋게도 명망 있는 가문의 고명딸이 된 셰리든은 무뚝뚝한 양아버지의 관심과
언제나 악의적인 양어머니 사이에서 양육 되었고 오빠들과는 그럭저럭 잘 지내며 자랐다. 단 한 명 망나니 에스라 오빠를 제외하고.
p64 그해 여름, 내 삶은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첫사랑 제리와 헤어지고 농장의 일꾼인 대니와 첫 경험 당시 셰리든의 나이는 열다섯이었다. 대니에서 브랜던으로 갈아탈 무렵 오빠들 중 가장
친했던 조지프가 해군에 입대해 버렸다. 양엄마 레이첼의 엄격함과 손찌검 그리고 학대가 더해가고 있었지만 집과 멀리 떨어져 나가 있기만 한
아버지는 딸을 보호하려 들지 않았고 집 안 그 누구도 레이첼과 에스라에세거 셰리든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없었다. 그녀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다.
여동생이 있는 욕실에 옷을 벗고 들어와 성기를 드러내고 자위를 일삼던 에스라에게 새 남자를 들키고만 시기도 셰리든의 열여섯 생일이 지나고
나서였다. 책을 쓰기 위해 왔다는 금발의 뚱뚱이는 사실 학교에 새로 온 선생이었고 부인도, 고향도, 직업도 모두 거짓말인 저질 성인 남자였을
뿐이었다. 그해 여름, 나쁜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1957년 캐럴린 쿠퍼의 일기장을 발견해 낸 것이다. 양아버지의 과거 연인이자
양어머니의 여동생, 그리고 셰리든 자신의 생모인 캐럴린. 그녀가 갑자기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있었던 일을 알아내야만 했다. 그 사이 에스라에게
성폭행 당할 뻔 하기도 하고 실제로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해 생긴 아이를 낙태하는 아픔을 겪었으며 에스라의 친구들에게 또 다시 성폭행 당할뻔 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것도 에스라가 100달러를 주고 사주한 덕분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성인 남자 닉은 게이였으며 말이 통하는 성인
남자인 목사님과는 불륜관계였지만 그 누구도 셰리든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 평범하게 사는 법에 대해 알려주지도 보여주지도 않았다. 열 여섯.
둘러싼 환경이 답답하기만 했던 십대 소녀 앞에 던져진 운명은 이토록 가혹한 것이었고 끔찍했다.
목졸려 살해되기 전까지...사랑을 잃고 가슴 아프게 살았던 생모의 인생을 자신의 욕심 때문에 망쳐버린 레이첼 이모의 죄상이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 저 가슴 밑에서부터 올라오던 눈물을 온 힘을 다해 눌러야했다. 열 여섯의 소녀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 해였고 온갖 끔찍한 것들을
겪어내야했던 시기였다. 열여섯은. 셰리든에겐.
그리고 모두에게 굿바이를 남기고 정말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떠났다. 빛나는 재능만을 챙긴채. 전재산 1000달러 뿐이었지만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은 더 가벼워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런 결말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밝혀진다고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누구라도
이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줄 사람이 나타나길 바랬고 달콤한 결말을 꿈꿨지만 넬레 노이하우스는 가장 현실적이면서 가장 무난하게 결말지어버렸다. 모든
고통에서 떠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