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0일생 소설NEW 1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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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유지로 부와 명성을 누려온 할아버지의 손자가 가정을 내팽개친 채 사내불륜을 저질렀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할아버지가 버린 연인의 손녀였다...는 스토리만 듣는다면 어느 방송사의 저녁타임 막장 드라마 스토리인가? 싶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굴곡진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끼고 60년이 흐르는 동안 한 집안에 얽힌 가정사라고 든다면 이 이야기는 좀 진중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2월 30일]은 그런 소설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나'는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무언가 치열하게 해내 본 것은 없는 사내다. 아내와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한 것도 아니고 성공을 위해 회사 일에 매진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대로 열심히 살긴 했으나 어딘가 모르게 그에겐 '반드시','꼭'이라는 열정이 빠져 있다. 그런 그에게 우연히 저지르게 된 불륜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끝냈다고 말하면서도 집착하는 상대를 적당히 이용하며 '희망고문'을 해대는 갑질남성이었던 그의 삶에 어느날 폭탄 하나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정계에 진출하기 위한 중요한 시기에 고향으로 돌아와 있던 그를 만나러 온 불륜녀 혜린. 미국 유학시절부터 필름이 끊기곤 했던 기억망각자인 그가 혜린을 만난 날 그녀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정말 혜린은 불륜남인 '현재'의 손에 죽임을 당했던 것일까. 자신이 죽인 것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로잡힌 채 혜린의 죽음을 파헤치던 현재는 25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던 '만리'라는 여자가 혜린과 얽혀 있으며 할아버지의 연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말았다. 평행이론일까? 악연으로 얽힌 것일까?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은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날짜인 '2월 30'일에 태어난 혜린의 존재가 아니라 j시를 발전시켜온 할아버지의 과거와 그로 인해 영향을 받고 있는 '현재'의 현재였다.

 

 

사건은 2가지로 압축되어 있지만 사실 과거로 파고 들면 더 많은 배신과 음모가 도사리고 있어 까도까도 또 나오는 양파껍질 같은 현재네 집안 이야기의 재미는 점점 더 증축되어져만 갔고 할아버지의 과거 행적뿐만 아니라 그가 윤조인지 대길인지 자꾸만 캐고 싶어졌다. 주인공(현재)의 마음이었다가 어느새 책을 읽는 나의 마음은 연극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으로 물러서졌는데 과거의 향이 시커멓게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구경하는 눈은 가까이, 주인공과 동일시 되던 마음은 저멀리로 달아나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은 마음, 도망가고 싶은 마음. 꼭 현재의 마음과 같이.

 

2월 30일에 태어난 여인.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그녀의 인생처럼 이 가족의 이야기는 거짓말처럼 지워버리고 싶은 치부를 숨기고 있다가 시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진실'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함께 나타났다.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가의 저력 스토리 그 자체가 아닌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 사이사이에서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을 기대감으로 가득찼던 내게 [2월 30일생]은 시선을 두면 둘수록 환해지는 거울을 보듯 숨겨지지 않은 인간의 욕망과 대면해야하는 불편함을 마주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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