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p446  사형은 무력하다? 사형은 무력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사형을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마음이 움직일만큼 신념은 굳지 않은 편이다. [데드맨워킹]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은 흘렸을망정 마음은 굳혀지지 않았다. 그랬던 내게 장르불문 최고의 스토리텔러 중 하나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 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형은 무력한 것인가.

 

엄마가 없는 소녀 이구치 사오리는 사춘기 시절 자신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후미야와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둘이 함께 죽였다. 21년 전의 이야기였다. 하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는

 

짙은 갈색 고양이 올레를 화장터로 데리고 온 가족. 그 가족의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정리해주고 있던 나카하라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내가 잠시 슈퍼에 다녀오는 동안 집 안에서 딸 아이가 살해되었다. 범인은 배가 고파서 강도짓을 하러 들어왔다가 어린 소녀를 화장실에 가두고 목졸라 죽였지만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던 남자였다. 딸을 잃고 함께 살기 괴로워 이혼했던 그에게 아내 사요코가 살해되었다는 두 번째 소식은 삶을 살아낼 힘을 앗아가기 충분한 그것 이었다.

 

그 두 사건이 교차되는 시점에 사람들의 상처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딸을 잃고 취재를 하며 살아가던 사요코는 21년 갓난 아이를 낳아 죽인 남녀의 사건을 알게 되고 지금은 의사가 되어 살고 있는 후미야의 집을 찾아나섰다. 법이 범죄자에게 너무나 관대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요코는 죽인 사람들의 반성이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후미야의 현재 아내인 하나에에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 고백을 함께 들은 사람이 있었다. 사요코를 찔러 죽인 노인이 바로 하나에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그 가족에게 평생 지고갈 상처를 남기는 일은 분명 단죄받아 마땅하다. 그 일이 실수에서 비롯되었건 고의적이었건 간에 책임을 져야하는 일은 분명한 일이다. 하지만 처벌도 목숨도 과연 유족에게 흡족한 위로가 될까. 죽인 쪽보다 죽임을 당한 쪽의 가족이 더 멍에를 지고 살아가게 되는 일은 참으로 불합리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프지만 그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