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가 이렇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겨우 첫 권을 읽었을 뿐인데, 머릿 속은 온통 뒤죽박죽 되어 버렸다. 4권까지 다 읽고
나면 이야기를 좀 더 잘 정리할 수 있을까. 최고라고 생각되어지던 <모방범> 이후 2년 동안 이 소설 하나에만 매달렸다는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고백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이 소설을 그냥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거의 모든 소설들을 읽어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군데군데
빠진 작품들이 있었던 모양인지 생소한 제목들이 엿보여 그들을 모아 한 달 동안 읽어볼까? 는 생각에 6월을 통째로 비워두었더랬다. 다른 책들을
읽을 시간을 보류하고 오로지 미야베 미유키를 위해 비워둔 시간 동안 나는 그간 지나쳤던 소설들을 꼼꼼히 읽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첫 시간이 브레이브 스토리 읽기였다. 1권~4권까지 총 네권으로 쓰여진 [브레이브 스토리]는 초등학생 와타루의 시선에서 모든 이야기들이
보여진다. 고후네초의 미하시 신사 옆 새 빌딩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 부모님이 싫어하지만 가까이 지내고 있는 친구 가 짱이 들려준 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5월의 어느 화창한 날, 아이들은 시트 덮인 빌딩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침투하기로 한 시간은 한
밤중. 술집 아이인 가짱이야 부모님이 일하시는 동안 몰래 나오는 것이 쉬운 일이지만 와타루는 글쎄...1년 중 200일 정도는 어머니와 둘이서만
살고 있긴 해도 다소 엄격한 엄마의 눈을 피해 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달랐다. 누군가가 와타루를 도운
것처럼 엄마는 코까지 골며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p9 처음엔 누구도 그런 이야기는 믿지 않았다. 전혀 믿지 않았다
12년의 결혼생활을 아버지는 그만 두려 하고 있다. 결혼 전 사귀던 여자와 다시 만나 아이까지 만들고 이혼을 강요하는 아버지. 남편의
배신으로 가스 밸브를 열고 아들과 함께 동반 자살을 계획할만큼 멘탈이 무너진 어머니. 그리고 사라진 아시카와의 초대를 받은 와타루. 운명을
바꾸기 위해 '비전'으로 향한 와타루는 정말 소원을 들어준다는 여신을 '운명의 탑'에서 만날 수 있을까. 다이마쓰 빌딩 계단 끝에 도착한
소년은 문을 열었다. 힘차게.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열두 살에게 이런 용기가 있을까. 내 나이 열 두살 때 나는 '운명의 바꾸겠다'는 마음을 먹어 본 일이 있었나. 그저 부모님의 어린
딸이었을 뿐이었던 나와 와타루는 같은 나이를 지나왔지만 참 다른 운명을 맞이했다. 환상의 세계로 통하는 문(비전)이 내 앞에 나타났다고 해도
나는 아마 망설였을 것이다. 이처럼 바로 그 문을 열어제치진 못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