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05년 드라마의 원작인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2004년 서점대상 수상작이다. 무려 아홉명이나 파출부를 갈아치운 바 있는 독특한 박사네 집으로 가사 도우미 일을 가게 된 20대 싱글맘. "진상"이 아닐까 각오하고 간 그녀에게 박사를 보기전 그의 형수는 한 가지 편견을 더 심어놓고 만다. 사람을 직접 판단하기 앞서 그의 소문부터 듣게 되는 우리네 사회생활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녀의 이번 일터.

 

그는 과거의 어떤 사고로 인해 딱 80분간만 기억이 지속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어김없이 다시 자신을 소개하고 어제 했던 물음일지라도 성실히 대답해야할 의무를 가지게 된 것이다. 새 일터에서 일하게 되는 규칙은 그러했다. 그렇게 1975년의 기억에 머물러 있는 박사와 함께 하게 된 그의 가사도우미.

 

"80분만 지속되는 기억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미리 심어둔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연민" 혹은 "호기심"이었고 어린 아들을 양육 중인 엄마 이기에 특별한 보살핌이 가정과 일터 양쪽에서 따뜻하게 펼쳐진 어느날, 박사는 이전 아홉 명과 달리 새 가사 도우미에겐 특별한 허용을 먼저 제안해 왔는데, 그는 그녀의 아들을 데려와 함께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그리하여 하교 후 64세의 수학 이론을 전문으로 하는 전대학 교수인 할아버지가 있는 곳에 온 아이는 마냥 신났다. 엄마와 함께 있는 것도 안정적이지만 무엇보다 아이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하는 특이한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의 일상에 나타난 단 한 사람의 남자 어른이었기 때문에.

 

로맨스도 울컥하는 갈등도 없지만 이 소설은 왠지 따뜻하게 읽혀졌다.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이나 ' 엄마의 은행통장'처럼 어른이 바라보는 세상도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도 똑같은 온도다. 부글부글 끓는 점이 높지는 않아도 '1월0일'처럼 차디찬 인간의 단면을 겪게 만들지도 않는다. 단 한 순간에도-.

 

160cm의 등굽은 노교수와 20대 후반의 가사도우미, 그리고 루트(평평하다고 해서)라고 불려지는 아이의 행복한 하루하루를 엿보는 부유한 미망인이 그들의 시간을 방해하기까지....! 그리고 한 장의 사진으로 밝혀지는 박사와 형수의 과거. 이후 영향을 받은 아들이 수학자로 성장하기까지 이야기는 이어지지만 매일매일 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느낌이 어떤지 책을 읽어도 그 일만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물론 같은 나날이 반복되는 것이 끔찍하거나 공포스러운 이도 있을 줄 안다. "타임바운스"나 "카르마"같은 일들은 아무리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지라도 반복 자체가 고문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같은 말을 또 하고 또 설명하고 또 이해시켜야 할 지라도 즐거운 일로 다가올 수도 있나보다. 이들 모자와 박사의 시간처럼. 반복된다는 것은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중요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므로.

 

4월의 햇살아래, 따뜻한 이야기 한 권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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