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 이우

왕자 이우 - 조선왕조의 마지막 자존심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월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일이 나던 그 시절에 로열패밀리였던 왕자 이우는 한글을 사용하고 조선의 노래를 불러대며 종국엔 황족 중 유일하게 조선인 아내를 맞이한 인물이었다. 간송 전형필이라는 인물을 역사속에서 발견해내고 "만세"를 불렀듯이 내게 처음 듣는 이름, 전혀 알 길이 없던 왕자,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사람이었던 이우라는 사람을 발견해내고는 얼마나 호기심이 일었는지........! 대체 실존했다는 이 사람에 대해서 왜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지? 라는 의구심과 함께.

여러 작가들에 의해 쓰여졌지만 그 중 김종광 작가의 소설을 통해 왕자 이우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가면서 페이지 수가 커질수록 인물에 대한 탐구는 깊어져만 갔다. 519년의 조선 통치 시간 속에서 이토록 고뇌하는 인물을 나는 전엔 본 일이 없는 듯 했다. 마치 "햄릿"이 작품 속에서 뛰어나와 이름을 달리하듯 왕자 이우는 고뇌하고 고민하고 사색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조선의 독립은 어떻게 진행되어나가야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영친왕 이은의 조카이면서 이강의 차남이었던 그는 어릴 적부터 기개가 남다른 아이였다. 그래서 친일 성향의 이은과 형을 부끄러워했고 일본인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조선인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도 한탄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망국의 황손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일본 순사를 향해 호통칠 줄도 알았으며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왕따 시키는 일본 학교의 동무들을 향해 썩소를 날릴 배짱도 있는 소년이었으며 납치범에겐 모종의 딜을 하며 위기를 모면할 줄도 알았고 일본인들의 망발에 버럭 화를 내며 바른말 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그는 나라 잃은 식민지의 황족이 어떤 위치의 사람인지 점점 성장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 그도 사랑 앞에서는 한낱 사내였을 뿐. 황족들은 모두 일본이 정해준 혼처로 시집가거나 장가를 가 불행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는데 그는 예전부터 눈여겨 보았던 박영효의 손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모두가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 조선은 조선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반대하는 결혼이었지만 끝까지 밀어부쳐 성사시킨 이도 바로 왕자 이우였던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들을 걱정했지만 정작 그의 뜻과 상관없이 반발세력들이 있어 그를 타도했고 오해를 사기 일쑤였으며 그가 마음에 품은 조선 독립의 꿈을 비웃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예언처럼 일본 천황이 항복 선언을 하고 대한민국의 독립이 코앞에 다가와 있을 무렵 그를 죽이고자 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그의 진심을 알아준 이가 세상에는 많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독립운동을 했던 김구를 독립의 순간 제거했던 것처럼 왕자 이우도 타도 세력들에 의해 여러 차례 죽음을 맛보았고 종국에는 짧은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히로시마로 향하던 순간 원자탄이 터졌고, 생각보다 부상이 심하지 않았던 그를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일본은 약을 투약했다. 왕자 이우의 장례식까지 치러진 마당에 그가 갑자기 살아 돌아왔으니......사람들은 얼마나 놀랬을까.

잘생긴 외모와 기개, 다정함 외에도 우리가 이우를 다시 찾아봐야할 이유는 100가지가 넘는다. 해방을 앞에 두고 갑자기 죽어버린 그가 좀 더 살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때에도 황실의 위엄을 전승받아 주었다면 지금쯤 우리나라에도 왕실이 내각과 함께 공존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국이나 일본처럼. 그 생각을 하니 약간 아쉬워졌다.

소설속 이우는 그 누구보다도 성정이 불같은 사람이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직언을 하기 꺼려하지 않았다. 용감한 왕자의 일대기는 그 길이가 짧아 아쉬웠다는 것 말고는 딱히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작가가 여성이 아니라서 섬세한 묘사를 읽는 맛은 없었지만 반대로 시원시원하게 쓰여져, 읽는 내내 군더더기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차분하게 흐름을 타면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아직 역사속엔 우리가 알아야할 인물들이 가득 묻혀 있을 것이다. 마치 고고학자가 된 듯 그들을 하나하나, 체크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지......!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는 바로 책 속에 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