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 천황을 맨발로 걸어간 자
김용상 지음 / 고즈넉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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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속 정도전은 두 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비교되는 인물인 정몽주를 절개의 상징이자 의롭게 그리는 이야기 속에서는 한명회스러운 이성계의 측근으로, 정몽주를 정치적인 인물로 그리는 이야기 속에서는 망국 고려의 끝자락 속에서 영웅을 도와 난세를 해친 지략가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는 "토사구팽"당한 인물이다. 그의 생각과 주군의 생각이 서로 달라 제거된 정치가가 바로 정도전이다. 그래서 관점에 따라 의인이 될 수도 기회주의자로 비칠 수도 있는 그에 대한 후세의 판단은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진 한 사내로 비춰졌으면 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으면서 가장 많이 회자된 인물이 바로 정도전이었다. 그의 이념을 쫓는 이들과 조선의 국왕 세종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명품 드라마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보는 내내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아"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못한 채 끝까지 지켜보기만 하게 만든 드라마였다. 마치 선거 전에 투표용지를 두고 이 사람을 뽑아도 실망~ 저사람을 뽑아도 실망~할텐데... 싶어 선뜻 선택하지 못한 마음처럼.

 

정도전. 개국공신이자 재상이었던 그의 이념이 대체 무엇이간데 태평천하를 흔드는 것이 되어 드라마 속에 중요 포인트로 등장했던 것일까. 언론인이자 작가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저자 김용상의 [정도전]은 이 화두를 탐하기 적절한 소설이다. 물론 많은 작가들이 정도전에 대해 다룬 바 있다. 같은 인물을 두고도 저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를 평가하는 필체는 사뭇 다를 수 밖에 없었는데 저자가 회상하고 있는 정도전은 출세지상주의자도 그렇다고 이상주의자도 아니었다. 신념과 소신은 있으되 시국에 따라 자신을 낮출 줄도 알았고 요리조리 따져볼 줄도 아는 인물이었다. 정몽주가 우직하다못해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두 귀와 눈을 닫고 보고자 한 모습으로만 세상을 바라본 것과 달리 그는 세상의 쓴맛, 단맛을 두루 맛보며 가장 알맞은 맛을 선택하는 영특한 요리사처럼 정치의 맛을 탐했던 인물이었다.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너무나 빠른 생각으로 조선을 살아간 인물, 정도전. 그래서 그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으로 군주를 세웠으니, 하지만 그래서 그는 또한 불행했는지도 모른다. 조선도 결국엔 고려와 같은 왕의 나라로 전락해 버렸으므로.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나라였건만 한낱 한단지몽이었다. 한순간의 꿈.

 

소설은 그의 죽음까지 이어져 있지 않았다. 조선을 설계한 그가 한때는 그를 스승으로 모셨던 제자 방원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슬픈 결말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 안심되기도 했다. 하지만 삼봉 정도전을 제거하기 전 방원의 갈등이 더해져 있었더라면 이야기의 결말은 조금더 다른 맛이 나지 않았을까 싶어 잠시 다른 궁금증이 일기도 했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분명 정도전과 같은 인물은 필요하다. 아니 절실하다. 너무 이르게 태어나 그 품을 뜻을 다 펼치지 못했던 그가 대한민국 속에 서 있다면 어떤 정책들을 내어놓게 될까. 아마 현 정부에 가장 쓸모있는 존재로 부각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잠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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