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여인들 - 역사의 급류에 휩쓸린 동아시아 여성들의 수난사
야마자키 도모코 지음, 김경원 옮김 / 다사헌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미국 교과서에 올려진 '요코이야기'는 읽은 후 반한감정이 생길 수 있는 이야기라는 소식을 언젠가 전해듣고는 "어째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더랬다. 식민치하, 말도 안되는 억울함을 당한쪽은 대한민국인데, 독일처럼 종주국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커녕 이를 회피하고 도리어 반한, 혐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행동들을 일삼는 일본의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에 대해 화가났던 것이다. 물론 요코이야기는 소설일뿐이다. 하지만 이 소설 한 편으로 인해 우리의 전 역사가 침해받아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경계에 선 여인들]을 읽으며 그 생각은 약간, 2%? 쯤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식민시대 여성들은 한국,중국,네덜란드, 동남아시아, 일본 여성 할 것 없이 모두 불행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여성사가 핍박과 고통으로 얼룩진 것에 대해 "일본"이라는 나라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일본은 우리 왕조를 파괴하고 중국의 왕조를 이용했다. 천황가와 인연이 깊다는 이유로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는 이방자가 되어 영친왕 이은과 결혼해야만 했다. 일본의 황태자비로 거론되던 그녀가 하루 아침에 제나라로 인해 멸망한 왕조의 비가 되어 평생을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신분으로 살아야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정략결혼은 만주국 황제의 동생 푸제에게도 강요되었는데 그는 일본 화족의 딸 히로와 결혼하는 과정에서 이미 결혼한 아내와 이혼해야 했으며 수용소에 갇히고 첫 딸의 자살을 살아서 감당해내야만 했다.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었던 과정이었을 것이다.

 

왕족들의 삶에서 "선택권'이 없어졌을때 서민들의 삶은 말해 더 무엇하겠는가. 일본인과 조선인의 결혼이 "내선결혼"이라는 이름 하에 일본의 국가 정책으로 수행되어졌고, 일본 처녀들을 만주땅 신붓감으로 보내진 "대륙의 신부" 정책도 일본이 동북지구와 소비에트 땅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세운 정책이었다. "사람의 삶"이 정치 앞에서 짓밟혀왔던 것이다. 이후 나라와 나라 사이에 끼여 불행한 삶을 살다간 이들에 대한 보상은 그 어디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단 한 번 밖에 살 수 없었던 인생이 이토록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일본의 만행을 더듬을 때 반드시 언급되어져야 하고 사과받아내야만하는 "종군 위안부" 내용이 이 책에서 빠질리 없다. 일본인 여성 연구가의 손으로 쓰여진 책이라 우리의 가슴을 후벼팔만큼 가슴 절절하게 쓰여지지는 않았지만 아시아 여성들을 "일본의 성노예"로  끌고 갔음을 인정하는 대목이라 제법 꼼꼼히 읽게 된다. 이들의 야만적인 행위는 아시아 여성을 넘어 네덜란드 여성에게까지 이어졌다니, 읽는 순간순간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눈 시울이 저절로 벌게 졌다. 국가의 이익을 앞세워 자신들의 범죄를 덮으려하는 일본의 만행에 대한 수준높은 각성의 소리외침이 커져가도 모자란 판에 종군위안부들이 모두 죽어 증인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린다는 그들의 말도 안되는 처사에 유감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일본에는 이렇게 비양심,비도덕적인 사람만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에스페란토주의자 하세가와 테루 부부는 '반전운동'을 평생 펼치며 살다 갔고 국적은 일본인이지만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우치 모토이는 3대에 걸쳐 한국 고아에 헌신하고 버려진 재일 조선인 노인들에게 봉사해왔다고 한다.

 

우리는 분명 역사적으로 상처입엇다.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선조들이 있고 현재도 일본의 만행을 수시로 뉴스로 접하며 분노하며 산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기 전에 동출판사에서 출간한 다른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복거일 저자의 [역사가 말하게 하라]는 제목이었는데, 이 제목이 [경계에 선 여인들]을 읽고 마음이 착찹한 내게 해답을 주는 것 같았다. 역사를 외곡하고 공정하고 윤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진실된 역사 앞에 사죄받을 일이 많은 우리들은 역사가 말하게 하는 것에 힘써야 옳지 않을까. 역사가 말하는 순간, 그 모든 일들은 한 타래의 실처럼 술술 풀려나가리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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