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맛보고 행복하다
장완정 지음 / 비앤씨월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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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을 켜온 손으로 빵을 굽기 시작해 페이스트리 셰프가 된 저자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삶의 방향은 역시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스케줄로 이어지는 것인가보다. "매직 핸드"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을정도로 소질이 탁월했던 그녀는 이스트 켄트 컬리지에서 최고 과정을 처음이자 유일하게 졸업한 학생이었고 최초로 외국인 강사로 발탁되면서 영국에서 활동 중이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성공담으로 전해 듣게 된 것이 아니라 전문가와 함께 하는 맛나는 여행으로 접할 수 있게 되어서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다.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는 달콤하고 맛나는 빵들이 주는 위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드라마의 영향 때문인지 맛나는 것들을 만드는 셰프들의 손은 하나 같이 퉁퉁해야 믿음직스러웠고 빼빼하게 마른 사람보다는 그 스스로 맛보고 즐기는 사람으로 보임직할만큼 풍채가 든든해야 맛나는 음식을 낼 것만 같은 믿음이 맘 속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페이스트리 셰프 장완정은 우리네 엄마처럼 눈가에 주름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묻힌 날씬한 아줌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소개하는 빵들은 하나같이 먹음직스럽고 당장 입에 넣어보고 싶어지는 것들이었다.

 

3000일 이라는 긴 시간동안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여행을 다녀온 그녀는 판매 위주로 유명한 세상의 카페나 베이커리를 소개하고 있지 않았다. 훌쩍 여행가서 몇몇 베이커리들만 먹어보고 예쁘게 사진찍고 돌아올 그런 상점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역사와 전통이 있고 구석구석 찾아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장소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P31   좋은 빵은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인 오스틴의 마을에 위치한 샐리 런의 집에서는 여전히 번이 구워지고 있다. 1680년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얼마나 오랫동안 검증된 맛인지 두말하면 입 아파진다.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케언스는 로열웨딩의 케이크를 장식한 여성이다. 56세가 되던 해 로열 웨딩케이크 제작을 도맡았던 피오나 케언스는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케이크를 완성해냈다. 은방울 꽃으로 장식된 웨딩케이크는 화이트뿐이었다. 그 장식 하나하나만 보면 더없이 화려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우아하면서도 단아한 케이크였다. 케이크가 총 12개가 사용되었다는 8층 높이의 케이크를 이 책이 아니었다면 또 어디서 구경할 수 있었을까. 피로연을 마치고 650여개의 조각으로 잘려 캔에 담긴 채 초대된 손님들에게 증정된 웨딩케이크의 조각 중 하나가 일 년 후 경매에서 320만원에 판매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보면 재미난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환자들을 위한 글로텐프리 빵, 프랑스인 스타 셰프 에릭 랜라드의 다양한 페이스트리들, 프랑스 전설의 빵집 푸알란, 독일의 건강빵, 프레첼로 발전한 브레첼, 도시의 달콤한 빵, 시골의 수수한 빵, 여러 나라에서 만나 뛰어난 셰프 등등 장소도, 음식도, 사람도 모두 낯설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흥미롭게 알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꼭 먹어보고 싶어 찜해놓은 것들 중에는 태국의 디저트 룩춥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누구에게도 룩춥의 존재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앙증맞고 알록달록한 이 디저트의 맛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된다는 이 디저트를 꼭 맞보기 위해서라도 태국에 한번쯤은 여행다녀와야 될 듯 싶다.

 

빵의 온기가 그리운 계절이다. 눈이 드문드문 내리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나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졌다. 책에서 소개하는 그 어떤 곳이라도 좋으니 훌쩍 떠났다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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