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 -상
김윤수 지음 / 다인북스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쉽게 읽히는 책이 좋다. 정보를 전달하고 배움과 학식을 위한 읽기가 아니라면 가독성 있게 쉽게 읽히고 휘리릭 넘기는 이야기가 좋다. 그러면서도 달달한 내용이라면 짬짬이 쪼개어진 시간동안 홀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책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10월이다.

 

후궁이라는 영화도 있지만 정궁이 아닌 후궁이라는 어감은 그 자체만으로도 슬프다. 무언가 부족한듯한 입지하며 탐해야하는 자리인 듯 하고 많은 수를 연상시키면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거나 죽이는 쪽의 이미지가 강하다. <불면증>,<마녀 길들이다>를 쓴 바 있는 김윤수 작가의 <후궁>은 영화와는 다르지만 둥그스름하게 피해가지 않아서 좋았다. 야한 부분도, 슬픈 부분도, 분노가 치미는 부분도 결코 약하게 다루지 않았다. 직설하고 직언하면서 주인공을 험하게 다루어 독자의 재미를 돈독히 하고 있다.

 

주인공 전향은 아주 아름다운 아이다. 어릴적부터 조실부모하고 세자의 유모가 된 고모의 손에 이끌려 궁으로 향했는데 그 세자는 추후 연산군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오를 이였다. 차용하긴 했지만 역사적 결말은 다르다. 우리가 한번쯤은 꿈꾸어봤을 내용, 정말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가 펼쳐진다.

 

폐서인된 어미의 한을 간직했지만 미치지 않은 왕. 사랑받지 못한 과거에 살기 보다는 사랑할 수 있는 현재와 미래의 여인을 위해 자신을 오롯이 던질 수 있는 남자. 그 남자의 후궁이 바로 전향이다. 석녀가 된 중전이 미색이 뛰어난 후궁들을 견제하기 위해 자신이 수족처럼 부리던 전향을 왕의 침소에 들여놓았으나 주객전도되어 전향은 왕의 유일한 사랑이 되었다. 아들을 둘이나 낳았지만 첫 아들을 낳자마자 중전에게 빼앗기고 마음에 한이 서리게 된 전향. 오라비처럼 여기며 마음을 터 놓던 시영도 죽고 친동기간 같던 신옥도 노비로 전락해 버린 지금, 전향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살아남아야겠다"는 마음과 "살아나가야겠다"는 마음 뿐이었으리라.

 

어린 소녀가 순진무구한 그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기에 궁은 너무나 거대한 음모의 동굴 속이었고, 입궁 후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면서 구중궁궐 속 여인으로 자라난 전향은 사랑보다는 신분과 지켜야 할 것들을 우선 순위에 둔 어미일 수 밖에 없었다. 영화 <후궁>속 그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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