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면허
조두진 지음 / 예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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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혼을 신청하는 부부의 사연을 보여주고 "4주후에 다시 만납시다"면서 유예기간을 주는 이혼조정기간을 알게 한 프로그램이었다. 사연인 즉 남편의 바람, 부인의 불륜, 시월드, 혼수문제, 대리모까지 다양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끝이 있지 않을까 싶어 1~2년쯤 방송하다 말겠지 했었다. 웬걸. 이 프로그램 장수 프로그램이 되어 아직까지 방송하고 있었다.

 

관심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몰랐는데 며칠 전 채널을 돌리다보니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 쓸 사연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라는 생각과 "여전히 보는 시청자가 있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함께 들어버렸다. 결혼과 이혼, 사랑과 이별,만남과 배신이라는 주제는 영화, 드라마, 노랫말의 영원한 주제라더니 그 입증이 아닌가 싶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등장했을 때는 엄청 놀랬었다. 대한민국에서 이중혼이라니. 그것도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일주일에 며칠을 나누어 사는 것을 허락하는 남자가 주인공이어서. 하지만 몇년 지나다보니 이보다 더 쇼킹한 소재들이 많아 금새 잊혀지고 말았다. 요즘엔 남자와 남자의 동성 커플도 등장하고 부인이나 남편의 바람쯤은 대수롭지 않게 등장하고 막장에 막장을 거듭하는 내용들도 차고 넘치다보니 왠만한 소재에는 눈하나 끔뻑하지 않을만큼 강심장인 시청자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부모면허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라는 바램과 마찬가지로 결혼면허도 존재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바램이 있었더랬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게임>으로 근로자문학제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는 조두진 작가는 [결혼면허]라는 책을 출간했다. 국가가 나서서 예비부부들에게 일정한 자격시험을 통과하라고 법적제도를 마련한 2016년을 사는 젊은 세대들이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결혼면허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 없다. 그 결혼 면허증이라는 것은 공인기관에서 수업을 들으면 1년의 과정을 들어야만 딸 수 있는 것으로 주인공 서인선은 ML결혼생활학교에 입학하면서 결혼에 대한 마음가짐을 준비해나간다. 물론 직접 체험하지 못하고 과정을 듣기만 한다면 1년이 아니라 10년의 세월이 흘러도 결혼은 겉핥기식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당한 나이가 되어서, 혹은 그냥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덜컥 결혼했다가 후회하는 것보다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혼생활의 지혜를 미리 습득한다면 서로에 대해 여유로운 배려를 펼칠 수 있을 거라는 점에서 결혼면허는 바람직해 보인다.

 

인선은 결혼면허시험에서 합격했다. 필기시험만 4시간짜리였다. 1년전에는 뚱하던 윤철 역시 결혼학교에 등록했다고 한다. 사랑이 변한 것도 아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변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동안 인선의 태도는 참 많이 변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움직이고 상대방의 위치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여자로 거듭났다. 결혼을 앞둔 어른의 성장점. 청소년 성장소설도 아닌데 [결혼면허]는 나이만 어른이었던 이를 내면까지 어른으로 성장시켜냈다.

 

30년을 넘게 함께한 부인을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소설은 쓰여졌다고 한다. 실제로 이들 부부의 사연은 소설 속에서 수업의 한 장면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내게 맞는 사람이 다른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결혼과 내가 살아가게 되는 결혼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소설의 후미에 등장하는 이 말이 내 가슴에 가장 와 닿았다. 그가 나의 배우자이고 내가 그의 배우자인 것은 서로가 묵묵히 지켜봐줄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나를 지켜보는 한 사람, 나의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을 묵묵히 지켜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둘이 함께 가는 것이라고..... 새삼 내 사람에게 고마워지는 대목이었다. 결혼을 할지 말지 여전히 망설이는 커플이 있다면 이 소설을 읽고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2013년, 아직은 정부에서 결혼면허를 법적으로 제정한 바가 없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16년에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남들도 하는 것이므로, 해야 하는 거니까"라는 대목에서 망설여진다면 이 책이 들려주는 현명한 충고에 귀를 기울여보면 좋겠다.

 

301페이지 : 결혼은 제삼자가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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