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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아드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2013년 박경리 문학상 수상작가는 아이오와주립대학교 교수이자 작가인 메릴린 로빈슨이었다. 박경리 문학상이기에 당연히 수상작가는 한국인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 상의 위상이 얼마나 드높아졌는지 나혼자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늘 책과 함께 살고 있고 "활자중독증"이라고 불릴만큼 장르불문, 다양하게 지식을 접하고 있었으나 역시 이 지식은 담장 하나 넘지 못하고 있었던가보다.
[길리아드]는 구약성서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지명이라고 했다. 치유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 소망의 성취와 관련 있으며 미국에는 "길리아드"라 불리는 마을이 여러 군데 있다고 한다. 2001년부터 소설집필을 시작했다는 저자는 '고요하고 평범한 인간사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 대해 토로하고 싶었노라고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 이야기가 담백하면서도 줄줄 읽히는 까닭은 나는 '가정사'에서 발견했다. 화자인 "존 에임스"는 목사다. 외할아버지, 친할아버지, 그 윗대 아버지들 모두 목사였고 대대로 목회자의 길을 걸어온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다만 장자인 형은 독일 유학후 철학자가 되어 무신론자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대신 그가 목사가 되어 집안의 가풍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1880년 캔자스 생인 그가 76세의 나이로 아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일들을 말하듯 남기는 이야기가 [길리아드]의 핵심 스토리다.
19 페이지 : 삶의 겉모습 속에는 많은 것이 있어
첫 결혼에서 아내와 아이 둘 다를 잃은 그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었다. 아직 어린 아들에게 노인이 된 아비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남긴다. 가정사 사이에 국가의 중대역사도 함께 스며든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에 대한 언급이 그들이다. 개인의 역사가 국가의 역사를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녹아 어제를 흘려 보냈기에 지나간 그 어제에 대한 회고이며 자신이 떠나고 나서도 세상에 남게 된 자식에게 전하는 부성애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오래된 서랍 속에서 발견된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꼭 전해야하는 안타까움이 스며들어 머릿 속에 또 다른 상황을 전개시켜보기도 했다. 잔잔한 이야기가 이토록 뭉클할 것이라고 예상 하지 못했기에 [길리아드]는 내게 뜻밖의 감정적 수확을 남겨준 소중한 작품이기도 했다. 이 저력이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게 만든 힘이 아닐까 싶다.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에는 그래서 마침표가 없다. 안녕이라는 인사말대신 '기도하고, 그런 다음에는 자야지'라는 당부의 말이 덧붙여져 있다. 아울러 자식이 용감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쓸모 있는 삶을 살기를 소원하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표현보다 때로는 이런 편지글이 "너를 아낀다는" 더 진한 표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