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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고여 시가 되다 ㅣ 도솔시선 1
한정석 지음 / 도솔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시를 읽으면 궁금해졌다. 시를 쓰는 시인의 “손”이.
새카만 밤을 불태우며 내뱉어낸 주옥같은 “시어”나 시인의 고혈로 쓰여진 한 권의 시집보다 나는 그들이 밤을 등지고 앉아 시를 써내려가는 그 사각거림이 있는 곱디고울 손이 궁금했다. 혀끝으로 내뱉는 말보다 때론 독하고, 눈으로 그어내린 시선보다 차갑지만 가슴 절절하게 데워지는 그 뭉클함이 있어, 나는 여전히 시를 읽고 그들의 손을 궁금해한다.
소설이 재미있다. 나같은 탐독환자(?), 메모환자에겐 호흡이 길고 읽을거리 많은 소설이 제격이다. 하지만 시의 세계는 언제나 워너비처럼 나를 끌어당기고 그 중간에 퐁당빠져지낼때면 나는 “재미”를 잊고 나를 잊는다. 시는 그런 존재였다. 내겐.
[침묵이 고여 시가 되다]라는 멋진 제목의 시는 최용탁 시인이 극찬한 한정석 시인의 첫 시집이다. 정치학과 문학비평을 두루 섭렵하고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그는 엉뚱하게도 신앙공동체에서 활동가로 일했던 경력도 있는 특이한 이력의 시인이었다.
도서관과 카페를 열며 파주에서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시인의 땀방울이 시에는 얼마나 담겨 있을지......! 그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부터 나는 시인이 담박에 좋아져버렸다.
p5 말에 관하여서라면 나도 ‘실패하며’ 살아왔다. 말을 ‘살아오지’ 못했다
이처럼 진솔하게 고백했던 사람이 있었던가. 말과 더불어 한판 잘 겨루어 보려던 그의 노력이 시집 한 권에 오롯이 담겨져 있다. 누군가는 그가 이른 “찬란한 아침”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또 누군가는 “차라리 멀리 날아가라 한 말의 무게”를 체험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시가 내게 닿는 위로는 그 깊이가 참 다르다. 외로울 때는 따뜻함으로, 괴로울 때는 달달한 술잔같이,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더없을 애인처럼 내 곁을 함께하는 “시”가 있고 그 시를 쓰는 “시인”이 있어 이 세상은 삭막함을 약간은 벗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