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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느릿느릿 걸어요 - 일본의 길고양이와 함께 보낸 오후
박용준 글.사진 / 예담 / 2013년 8월
평점 :
반려동물인 고양이 네마리와 함께 하면서 나는 비로소 머리로 옳고그름을 가리던 사람에서 탈피하여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재탄생했다. 외롭고 쓸쓸함에서 벗어나 마음 가득 행복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다 고양이들이 함께 살며 마음을 나누어준 까닭이다.
[고양이와 느릿느릿 걸어요]는 일본의 길고양이와 함께 보낸 오후가 담겨 있다. 물론 고양이를 소재로 한 책들은 서점가에 넘쳐난다. 언제부터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되었던 것일까. 어떤 모습이든 베스트 샷 포즈를 취해주는 이 사랑스러운 생명이 카메라 렌즈에 잡히고 예쁜 글 속에 어린다. 골목의 오후를 함께 보낸 고양이들과의 아스라한 추억은 "인생 별것 없다옹~"이라는 가르침까지 전달받는다.
책을 통해 일본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자신의 영역에서 누리며 산다. 만족하고 여유롭게 사는 삶.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사는 삶. 구로카와 온천 문턱에 옹기종이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까맣다는 뜻의 쿠로"라는 이름으로 유후인에서 살아가고, 후쿠오카 아이스크림 가게 지붕 위에서 호객 행위도 하고, 부자 신사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그들의 삶은 세상 모든 고양이가 색다르듯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모두 사랑스럽다. 나가사키 골목의 꼬물이들조차 함께 어울려살아가는 법을 터득한듯 식빵굽기도 하고 세상 모르게 늘어져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 이 책에 소개된 주소지로 가면 정말 이 아이들을 다 볼 수 있는 것일까. 궁디팡팡도 해주고 싶고 쓰담쓰담도 해주고 싶다. 가방 속엣 맛난 간식캔이나 스낵들도 꺼내 먹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여권을 들었다놨다하게 만든다. 아, 보고싶다. 이 고양이들. 모두.
비가 오면 맞아야하고 간혹 친절하지 못한 사람과 마주칠때도 있지만 묘생은 행복하다. 토실토실한 궁뎅이를 흔들면서 살아가는 고양이들. 장수마을이 많다는 일본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가득한 어느 마을엔 7세 고양이가 가장 젊은 나이라고 했다. 1년에 한번 볼까?말까?한 손자들보다 노인들에겐 고양이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을지.....!
특이하게도 일본의 로또점엔 고양이가 있었다 마네키네코라는 행운을 전하는 고양이 인형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고양이였다. 점장 고양이는 복권을 사러오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나누어주며 사랑받고 있었다. 이 점장 고양이 덕분에 손님이 넘쳐난다니....맛난 간식을 먹을 자격이 충분한 것이 아닐까. 이 삼색 고양이는.
마지막으로 "고양이 섬"이라 불리는 아이노시마의 고양이들은 언제봐도 정겹다. 여러 책에서 봐왔지만 볼대마다 다른 아이들이 찍혀 있어 약간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어도 그 외 이 고양이들은 도시의 길고양이들보다 더 좋은 입지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눈만 마주쳐도 달아나기 바쁜 우리네 고양이들과 달리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본의 고양이들의 삶이 약간 부러워졌다. 빨래널리듯 널려 있는 그들의 웃음짓는 모습조차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그래서 죽기 전에 이 섬에 꼬옥 가보고 싶어졌다.
부러움반 사랑스러움반으로 읽다가 문득 남이섬에서 인사하던 마중 고양이가 떠올려졌다. 이 책 속 여유로운 고양이들처럼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던 그 고양이처럼 대한민국 모든 길고양이들이 천대받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괴롭힘받지 않고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다니며 행복하게 제 명을 다하길 바라게 된다. 자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