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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사람, 임동창 - 음악으로 놀고 흥으로 공부하다
임동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5월
평점 :
국악 피아니스트 임동창은 바느질하는 여자 효재의 남편으로만 알고 있었다. 몇몇 다큐멘터리 혹은 책 속에서 비춰지던 바람같고 자유스러움이 물씬 풍기던 그 남편의 모습. 언제든 집을 훌쩍나가 한참을 비워도 이상하지 않을 남자. 오히려 집 안에 갇혀 있으면 이상한 남자 임동창. 나는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이런 이미지였다.
그런 그가 아내의 이야기는 쏘옥 빼고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로만 우리 곁을 찾아왔다. 음악 외에는 수다스러울 것 같지 않은 남자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 그래서 더 솔깃해진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노는 사람, 임동창]이라는 책 한 권으로 인해.
그는 정규 교육에서 스스로 벗어난 인물이었다. 우연히 들은 피아노 소리에 매료되어 학교가는 것도,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도, 가정의 울타리 속에서 자라는 것도 잊어버린 채 오로지 피아노를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그러나 가난했다. 집에 피아노가 없었기에 당연히 집 밖을 맴돌았고 피아노가 있는 곳이라면 교회든 스승의 집이건 피아노실이건 상관없이 그곳이 머무를 곳이었다. 이쯤되면 연애로지차면 사랑을 넘어선 집착일텐데 그 대상이 여자가 아니고 피아노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미스김은 자발적 계약직을 고수한 여성이었는데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이 세상 속에서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려는 여성이었기에 그녀의 삶의 행로가 남달라 보여던 것이다. 미스 김처럼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삶 역시 그러했다. 음악으로 놀고 음악으로 공부한 그의 지난 날은 피아노를 빼고는 말할 것이 없었고, 천재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피아노를 연주하고 작곡을 해대던 그는 평생의 화두가 "뭐꼬?"라고 그랬다.
본질을 찾기 위해 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자랐던 그가 머리를 깎고 절로 향했고 스님이 되었던 그가 사랑을 놓으면서 풍류를 붙잡고 살았다. 음악과 자유만을 위해 살 것만 같더니 바느질하는 참한 (?) 여자와 만나서 평범함을 놓고 그들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일탈도 이쯤되면 입방아에 오르내릴만한데 도리어 그들의 삶은 그들 다워서 참 보기 좋아 보인다.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을 즐기던 그의 어린 날이 [피아노의 숲]과 겹쳐졌다. 숲 속에서 무거운 건반의 피아노를 자유롭게 연주하며 즐거워하던 소년의 얼굴. 그의 표정 역시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 피아노 소리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은 없지만 내게 그는 피아노의 숲 에 등장하던 천재 소년의 그것처럼 오버랩 되어 있다.
p298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에게 묻는 것은 참 안어울릴법 한데. 이상하게도 그 대답을 가장 잘 알려줄 이 또한 그인 듯 했다. 뭐든지 꽂혀서 열심히 하면 두 달이면 결판이 난다고 했던가. 이제껏 무엇이든 석달을 미쳐(?) 보던 나와 달리 그는 두 달이라는 시간을 유예로 두고 있었다. 그를 찾아온 사람에게도 그래서 두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결국 그는 피아노가 길이 아니어 글을 쓰다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했다. 에너지가 새지 않는 것. 분산된 에너지를 모아 자신의 길을 찾는 것. 화두에 대한 해답은 이 곳에 있었던 것이다.
p302 공부라는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상태인가가 중요하다.
몰입된 상태. 그 몰입된 상태가 없으면 어떤 것을 해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한다는 그는 세상에 나와 있어도 이미 선인이었다. 그에게서 피아노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배워나간 이들에 대한 부러움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교육이 "타이밍의 예술"이라 일컫는 그는, 자신의 화두도 오십이 넘어서야 겨우 끝냈다고 고백했다. 깨닫고 가는 이가 있는가하면 문제성 마저도 제시하지 못한 채 그저 밥먹고 잠자고 살아가기만 하는 이들도 얼마나 많은지......! 나는 생각하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하고 다른 것인지 그의 지난 날을 보며 깨닫고 있다. 내게도 던져진 화두가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