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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論
키리도시 리사쿠 지음, 남도현 옮김, 송락현 감수 / 열음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장인"이라는 단어로 그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이미 그는 장인의 그것을 뛰어넘어 "거장"의 반열에 올랐던 것이다. 나는 그의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다. 그 의미도 모르면서 "미래소년 코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천공의 성 라퓨타","모노노케 히메" 등등을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지냈고 그 만화에 동화 되면서 세뇌당하며 살아온 세대다. 그래서 그의 그림체는 디즈니의 그것보다 익숙하며 그 어느 애니메니션보다 우선 순위에 놓고 보게 된다. 영향력이란 이런 것이다.
헐리우드가 영화 산업으로 세계 문화를 잠식해 왔다면 일본은 단연 애니메이션과 만화 산업으로 세계 어린 싹들의 머릿속을 채워왔다. 그들의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영화를 만들고 만화를 만들고 문화 산업을 육성해나간다. 어찌보면 거대하고 어찌보면 무서운 이 현상을 두고 우리의 문화세대를 이끌어가는 주자들은 섬찟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문제는 그의 이야기가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전히 계속되고 잇는 그의 작품들을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 역시 보고 자란다는 것이다. 1950~60년대의 일본 시골을 보고 친근하게 여긴 아이들, 현실을 부정하는 돼지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자라날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속 어느 것도 보여줄 수 없음이 개탄스러워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단순히 보자면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보기로 끝내야할지도 모른다. 복잡한 머릿속과 단순한 마음 속 가운데서 나는 여전히 시소를 타며 일본 애니메이션 보기에서 손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마음이지만 한편으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구경하게 되는 그들의 이야기들에서-.
[이야자기 하야온 론]을 통해 그 작품 속 배경을 공부하고 캐릭터가 가진 상징성을 알아가게 되면서 머릿속은 점차 더 복잡해져갔다. 알고나니 한층 더 무거워진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종전국의 사과와 후회 따위는 없이 여전히 뻔뻔하게 신사참배를 하고 아시아를 향해 참회의 고개숙임없이 그들의 지난 만행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들이 전하는 이 애니메이션 한 편을 가히 그냥 순수하게만 접해도 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운데, 비판보다는 비평의 눈길로 바라보기 위해 나는 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읽고나니 더 혼돈스러워진 것도 사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그는 거장임에 틀림이 없다. 그가 시대를 통해 우리 앞과 뒤 세대에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는 역사가 기술하겠지만 그 속에 세계를 향한 동심외에 그 무엇도 혼탁하게 섞여있지 않기를 하는 바램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