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평점 :
세기의 석학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영화로 먼저 보고 원작을 찾아 읽은 경우였다. 남자들만 가득한 이야기가 의외로 재미있었고 혀가 시커멓게 되어 나타나는 시체들에 대한 미스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놓아주지 않아 결국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된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댔다. 엄마의 꾸중을 뒤로 하고.
중세. 기사가 있고 왕과 왕비가 있었으며 종교의 탄압과 강제성이 존재했지만 마법사도 있었던 시절. 뭔가 깨끗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 진흙이 잔뜩 묻어나올듯한 그 시대가 나는 왜그리 로맨틱하게 상상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시대에 대한 동경이 얼마간 있어 중세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꽤 찾아내어 읽어왔는데 움베르토 에코의 신작 역시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절대 빠짐이 없는 수도사들의 수도원도 배경으로 등장했지만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시대를 호령한 거짓말쟁이의 거짓말로 엮인 2권 분량의 소설 속 내용이었다. 작가가 6년만에 내어놓은 야심작이니만큼 전작과는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들었고 그 중심에 세기의 거짓말쟁이 시모니니 캐릭터가 있으니 호기심은 배가될 수 밖에 없었다.
흔히 사용되는 장치인 기억상실을 이용하여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어디서부터 거짓인지,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헷갈려하다가 그 진위를 결국 포기해버리게 만드는 힘은 어느 작가에게나 있는 힘은 아닐 것이다. 똑똑하고 영리하게 독자를 다루는 힘을 가진 작가이기에 그에게 속지 않으려고 발버둥쳐 보았지만 결국엔 2권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그의 이야기가 이끄는대로 끌려가고야 말았다.
모든 것을 증오하며 살아온 시모니니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을 함정에 빠뜨리면서도 결코 죄의식을 갖지 않는 인물이었다. 현대라면 사이코 패스처럼 분류될 이 인물은 중세라는 순진무구한 시대를 등에 업고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화해나가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그의 일기는 진실이 아닌 거짓의 그것에 가까운 것이 되고야 말았다.
움베르토 에코는 감히 흉내내지도 못할만큼 똑똑한 시대의 석학 아이콘이다. 그런 그의 머릿 속에서 이야기들은 기호가 되고 퍼즐이 되고 조각이 되면서 이렇듯 몇년씩 발효된 채 세상에 내뱉어지는 걸 보면 늘 놀랍기 그지 없다. 그의 머릿속 이야기들은 대체 어떤 단어로 시작되는 것들일까. 이번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나는 이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