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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게 나를 맡기다 - 영혼을 어루만지는 그림
함정임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12월
평점 :
나는 늘 내식으로 그림을 보러 간다. 언제나 그림을 구경하고 해석하고...화가의 배경이나 그가 그림을 그린 사연 따위와는 상관없이 나의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그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편인데, 저자는 특이하게도 그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이야기를 나누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점이 가장 특이했다.
[그림에게 나를 맡기다]는 그 제목과는 달리 그림과 이야기하는 저자가 그림을 소개하는 방식이라 그의 독특한 시선이 느껴져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림들과 화가들의 자화상은 그래서 이웃의 것과 같은 친근함이 담겨 있었다. 볼때마다 빛의 빛감에 깜짝 놀라고야 마는 베르메르의 여러 그림들도, 눈썹이 붙어있어 강하게 보이는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도,오동통한 입체감이 정감있게 다가오는 라파엘로의 그림들도 그림 속에 스토리텔링이 담겨져 있다.
물론 익숙한 그림들 속엔 낯익은 것들도 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이나 그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게 느껴졌던 베이컨의 [십자가에 못 박힘을 기초로 한 형상의 두 번째 버전]은 이 책 속에서 발견한 특이한 그림들이었다. 예술의 높은 문턱이 한결 낮아지는 느낌이랄까. 비싼 관람료를 내지 않고도 그림과 가까워지는 방법은 책을 통한 방법도 한 방편이다. 여러 책들을 섭렵해보니 그랬다. 꼭 원화를 봐야하거나 큰 화폭으로 즐겨야만 즐거운 것은 아니다. 그림의 그 다양한 장르와 그림체를 구경하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즐겁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책이지만 그림 속 이야기들은 낮에는 재미난 일화로 밤에는 위안이 되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어느날 밤엔 루벤스의 [한국 남자]가 그 그림 속에서 튀어나와 외국인 같은 외모로 왜 한국남자라를 제목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되었는지 들려주었고, 윌리엄 터너의 [황금가지]는 몽환적인 호숫가로 쏘옥 들어가 그 풍광을 즐기는 한 사람이 되어 함께 구경하는 구경꾼이 되기도 했다. 그림에 스토리텔링이 입혀지고 천일야화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생과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너할나위 없는 상상력의 증폭과 그림과 내가 함께 만들어낸 즐거운 이야기들이 남겨졌다.
그래서 그림을 본다는 일은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 역시 즐거운 일로 기억에 남겨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