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플로리스트
조은영 지음 / 시공사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나 사표썼어.

언제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말투도 느릿느릿해서 여유롭게 보였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사표를 쓰다니....! 청담동이 집인 정말 엄친딸인 그녀는 얼굴도 연예인 뺨치게 예뻐서 두루두루 부러움을 받고 있었고 더군다나 치과의사 남친이 생긴지도 얼마되지 않은 알콩달콩한 이 때, 대체 사표를 쓰고 어디로 간다는 것인지. 두번째 폭탄선언은 그 다음이었다.

 

영국 갈려구.

뭐? 영국? 대체 왜? 꽃이 좋아서. 거기서 꽃을 공부할 거야. 라니. 한국에서도 꽃을 공부할 수 있을테지만 그녀는 그렇게 사표한장 던지고 훌훌 떠났다. 황당해하던 우리를 뒤로하고. 하지만 몇년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진정 그녀의 자유의지에 대해 박수를 보낼 수 있었고 심지어 그녀처럼 할 수 있다면...하고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플로리스트.

이 단어조차 생소하던 그때, 그녀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인지 그렇게 영국으로 떠났다. 이 책의 저자처럼.

 

조은영이라는 이름은 중학교 시절 내 절친의 이름이어서 혹시나 그 애인가 해서 책을 구석구석 훑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친구가 아니었다. 나이때도 비슷하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그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름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일기 시작했고 그녀를 향한 무한정의 애정을 담뿍 담아 책을 읽게 만들었다.

 

20대엔 물망초나 국화를 지인들에게 자주 선물하곤 했는데, 장미나 해바라기 같은 꽃보다는 물망초나 국화같은 꽃들이 내겐 더 예뻐보였다. 30대가 되어서는 어쩐 일인지 수국을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동그랗고 탐스런 그 모양새도 모양새지만 연한자주, 보라, 블루, 화이트 톤의 색들이 혼자 있어도 다른 꽃들과 어울려 함께 있어도 조화로움이 색달라 좋아하게 되었다.

 

런던의 플로리스트였던 저자는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할까. 그것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하지 못했지만 여러 셀럽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영국인이 보기에도 너무나 영국적인 스타일을 잘 소화해냈던 한 한국여성의 영국에서의 9년동안의 삶은 수수하게 펼쳐졌지만 알차게 구경하게 만드는 매력이 가득했다. 영어가 서툴러 실수가 많았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커리어를 얻었고 기회를 얻었고 사람들을 얻어왔다.

 

내가 제일 잘나가~!!라는 식의 잘난 척이 쏘옥 빠져 있어 읽기에 편했던 그녀의 경험담들은 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야하는지 절실히 깨닫게 만들고 있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며 지금 당장의 어려움보다는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것! 그 이후의 일들은 정말 우주가 다 도와주는 것처럼 여러가지 보상으로 그녀에게 주어졌다. 부러우면서도 미소짓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런던은 볼거리,즐길거리가 많은 곳이었을텐데 그녀의 눈엔 온통 꽃들 밖에 보이질 않았나보다. 호텔에 가서도, 영화 속에서도 심지어는 동네 어귀에서조차 꽃들을 발견해내곤 했으니까. 누구든 자신이 관심있는 것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인가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것!

그 일을 위해 그녀가 책임져야 했던 시간은 비단 9년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말도 낯선 남의 나라에서 눈물콧물 쏙 빼며 버텼을 그녀의 근성에 박수를 보내면서...플로리스트가 우아하게 파티장에 나타나 꽃들의 위치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직업군이 아니라 온통 손을 베어가며,무거운 화기들을 옮겨가며,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맞춰가며 일해야하는 크리에이티브 직업군임을 그녀를 통해 처음 깨닫게 되었다. 얼마나 고되었겠는가. 하지만 아름다운 꽃들과 근무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사실은 여전히 부럽다.

 

그녀가 전하는 꽃이야기엔 향기가 빠져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음이 가득 꽃으로 채워져 꽃밭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음 외출 때는 오랜만에 꽃 한다발을 구매해 볼까 싶다. 그새 꽃 한다발 살 마음의 여유조차 잊고 살았다니! 무엇을 위해 그리 살았을꼬. 삶은 유한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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