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스티그와 나
에바 가브리엘손.마리프랑수아즈 콜롱바니 지음, 황가한 옮김 / 뿔(웅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평생 한 사람만을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약속인 “결혼”을 합법화 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독신세대의 수가 많아지고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함께 사는 이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해줄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우리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의견들이 분분한가보다.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기준을 적용시키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들 부부처럼 32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 법이 보호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면 개인의 권리와 인권은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미국과 달리 스웨덴 법정은 사실혼 관계에 따른 유산상속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라는 사실을 나는 에바 가브리엘손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충격이 머릿속을 헤집고 말았다. 어째서....?

 

 

동반자이자 지원군으로 살아온 에바와 스티그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둘 다 부모의 슬하가 아닌 조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났으며 자신들을 위한 삶보다는 타인을 위한 사회참여활동을 하며 살아왔고 그로 인해 가난한 삶과 생명을 위협받는 삶, 자식을 둘 수 없는 삶을 감내해내야만 했다. 희생을 치르고서도 그들이 지켜온 삶들은 스티그가 어느날부터 쓰기 시작한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를 통해 재배치되기 시작했고 여러 출판사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은 발칵뒤집혔다.

 

 

총 10부작으로 계획되었던 방대한 양의 밀레니엄은 저자 스티그의 갑작스런 심장마비사로 인해 멈추어졌고 3부작만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 작품 속 캐릭터나 배경, 시사하는 바까지도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글이어서 독자들로서는 그의 죽음을 한탄하며 애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가운데 놀라운 일들이 밝혀졌는데 스틱 라르손의 평생의 연인이었던 에바 가브리엘손이 사실혼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지적 재산권에서 손을 떼야했으며 함께 했던 아파트 역시 그녀에게 남겨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모든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그녀에게 전한다는 스티그의 유언이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증이 되지 않았고 법적으로 결혼한 부인이 아니며 아이가 없는 사실혼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죽은 이의 바램은 묵살되었다.

 

 

스티그의 아버지와 그의 동생은 이때다 싶었는지 3부작 원작과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의 수입을 가로채갔으며 아파트까지 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32년이라는 세월동안 동거동락한 며느리이자 형수를 쫓아내다시피 하면서 안면몰수한 그들의 욕심은 대체 어디까지인지. 그들은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티그가 생전에 써 놓았던 작품 속 인물들의 본명을 뒤바꾸는 등 작품 자체에도 손을 대며 훼손하고 있지만 스웨덴 정부는 묵인한 가운데 에바와 그녀를 지지하는 지인들만이 그 안타까움을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밀레니엄 그티그와 나]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이쯤이면 충분히 밝혀진 듯 했다. 그 외 이 특별한 남자와의 추억을 회고하고 있는 에바는 어느날 갑자기 준비되지 못한 이별을 맞이하게 된 후 엉망이 된 자신의 삶과 그 가운데 서서 어찌할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4부의 원고를 에바에게서 갈취하고 출판하기 위해 라르손 부자는 말도 안되는 제안을 에바에게 해 왔는데 시아버지와 결혼을 하라는 거였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그것도 공개적으로... 부끄러움도 모른 채 내뱉고 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불끈불끈 주먹이 쥐어지는 페이지들이 있는데 너무 화가나서 말문이 막힌다는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싶다.

 

 

밀레니엄에 중독(?)된 독자로서 4권이 출판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출판을 위해 에바가 욕심쟁이 부자의 말도안되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찬성할 수가 없다. 밀레니엄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책뿐만 아니라 에바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주기를 기대하면서 이 책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길 소원한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평소 삶에서 보여진 성격 그대로 스티그는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을까. 리스베트가 묻혀진 흙 속에서 다시 땅으로 솟아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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