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의 친전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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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인이 아닌 내게 김수환 추기경을 알기 전 “추기경”이라는 단어는 “중세”, “종교개혁”, “십자군 전쟁”, “리슐리외”, “체사레 보르자의 아버지” 정도가 떠올려지는 단어였다. 한마디로 부정적인 의미가 가득한 단어였던 것이다. 막강한 권력을 뒤에 엎고 세상을 좌지우지하며 종교를 무기삼아 왕권과 맞서고 종교를 이용하여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부인과 아이들이 줄줄이 있는 권력가. 그들이 보여준 인생은 그러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국민적 멘토였던 김수환 추기경으로 인해 이 모든 이미지가 한 톨의 의문도 없이 철저히 분쇄되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여러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지만 그와 다르게 이렇듯 모든 사람들이 쌓아올린 이미지를 부셔주는 것 또한 그의 영향력이요, 힘인 것이다.

 

 

“카리스마”의 시대가 지나고 “부드러움”이 대세가 되었던 지도자상에 가장 어울리는 분 역시 김수환 추기경이셨다. 1998년 76세로 교구장직에서 은퇴하시면서 그의 여정이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었음을 우리 역시 익히 잘 알고 있다. 추기경님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분의 말씀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시금 되새김질 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말씀 속 유머때문이었다. 그분의 여유는 말씀 중에도 웃음을 만들곤 했다. 가령, 누군가

 

 

“혹시 추기경님 아니세요”라고 하면

“나도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라고 답하셨다고 한다.

2008년 사경을 헤매다 다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에도

“짠, 내가 다시 살아났어요!”하셨다니,

 

 

그분의 심적 여유는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열려 있기에 더 겸허하게 만든다. 머리로 산 삶이 아닌 가슴으로 산 삶의 증인이셨기에 나는 종교를 떠나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에 주저함이 없어졌다.

 

 

건국이래 최초의 추기경 서품을 받으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평화로운 시대의 선봉장이 아니었다. 고난과 시련이 가득했던 일제시대에 수학했으며 광복 이후에도 70~80년대로 이어지는 굴곡의 시대 서울대 교구장에 임명되었고 90년대를 지나 선종에 드시기 전까지 이 시대는 혼란 속에서 그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었다.

 

 

책의 말미에 적혀진 것처럼

 

“위대한 인물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그분을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 같은 분은 다음 세기에도 만나뵐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 국민적 멘토를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두 분이 없는 세상이 더 어둡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그리움이 있기에 [친전]을 통해 만나뵙는 그분의 지난 발자취는 그리움이 물씬 담겨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일생이 이토록 여러 사람에게 배움이요, 그리움이 될 수 있다니.....인간의 삶이란 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오늘 나의 기도는 길어질 듯 하다. 좋은 말씀으로 아름다움이 마음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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