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산문.시편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주영숙 엮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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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력은 참으로 특이했다.

 

 

경기대 외래교수이자 한국화 화가이면서 전통 공예가인 그녀는 소설,시조,평론으로도 수상 이력이 화려한 문인이었던 것이다. 하늘이 이토록 한 사람에게 많은 것을 허락해도 좋은가.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 그녀의 눈에 왜 하필이면 “연암 박지원”이 꽂힌 것일까. 이전 작품 중에도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소설편]이라는 책이 있는 걸 보면 어제 오늘 가졌던 관심이 아닌 듯 했다.

 

 

학창시절 배웠던 연암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해학적인 소설들만 떠올려졌는데 어려운 한문문학으로 쓰여진 연암의 문학은 그녀는 소설은 배제시키고 산문편과 시편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연암의 작품들은 내게는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연암 박지원.

 

 

엄격하고 꼬장꼬장한 얼굴 뒤로 한번씩 웃어주는 미소가 부드럽게 느껴질 빼빼마른 할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되던 것과 달리 스스로를 소개하는 글 속 모습은 여러 날 세수도 않고 망건도 쓰지 않은 게으른 양반이며 몸이 비대하고 여름 더위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런 그의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아 웃음이 나면서도 참으로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협곡에 있는 거처명을 호로 삼았다는 연암은 다리 다친 새끼 까치에게 밥알을 던져주며 이야기를 걸기도 했고 [제망매가]가 떠올려질만큼 누이와의 이별을 슬퍼하며 시를 짓기도 했다. 남긴 작품과 달리 그의 삶은 꼿꼿한 양반의 그것이라고만 생각해왔던 내게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속의 연암은 양반이 아닌 인간으로 다가왔고 그의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편안하고 가까운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

 

 

조선시대 양반의 하루가 충과 벼슬에만 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일상에도 걸쳐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들도 사람이었음을, 사극 드라마를 통해 본 삶이 다가 아니었음을 이제사 알게 된 것이다. 어리석게도.

 

 

사육신의 죽음 이전에는 그들의 평범한 삶이 있었을 것이고, 연산군의 광폭이전에는 웃음짓는 일상이 있었을 것인데 우리는 후대의 평가잣대 그대로만 그들을 평가하고 그 순간의 그들 모습만 알 뿐임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일상 속 연암의 모습은 누가 “연암”이라는 언질을 미리 주지 않고 미스터리 원고로 툭 던져 주었다면 결코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머리 빗고 세수하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진다고 고백하질 않나 친구가 죽은 뒤로는 경조사를 모두 외면해버리기도 했다. 감정적이지만 인간적인 그의 모습 뒤로 물론 학식 가득한 양반의 모습도 덧대여져 있긴 했다. 자신의 일화 뿐만 아니라 황희 정승의 고사나 중국의 고사도 여러 편이 소개되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발췌본 뒤로는 반드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덧대어져 있으며 왜 소개되었는지도 알게끔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에는 “빛깔과 소리”가 공존한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연암의 모습 외엔 아는 바도 관심도 없었던 내게 연암의 새로운 글들은 좋은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분명 어려운 구석도 있었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읽어야 될 페이지에는 따로 표식을 해 두기도 했는데 글 읽기란 이렇듯 단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기에 남겨둔 숙제처럼 즐거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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