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그날의 일곱 시간
수잔네 프로이스커 지음, 홍이정 옮김 / 샘터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그날,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였다.

 

이 문구를 홀로코스터를 위한 박물관에서 발견했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재혼을 열흘 앞두고 7시간의 무자비한 성폭행에서 살아남은 한 여인이 쓴 책 앞에 쓰여진 글이다.

 

 

 

女...

슈트라우빙 교도소에서 폭력 범죄자를 치료하는 업무를 담당

심리치료사 수잔네 프로이스커

올리브 기름으로 레시피를 벗삼아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여인

 

 

 

男...

2009년 아내를 살해한 연쇄강간범.

희생자 중 한 명은 시효가 말소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심각한 손상을 입어 법정 출두가 불가능했으며, 마지막 희생자는 사망했다.

촉망받는 심리학자였던던 그녀는 자신이 치료하던 범죄자에 의해 감금되었다. 사회치료과 소장이자 교수였던 삶은 그 이후 많이 달라져갔다. 칼로 찔러대며 순간접착제로 입을 봉해버린다는 협박과 동시에 7시간동안 지치지도 않고 여러 체위를 강요했던 성범죄자. 그날의 일을 기록한 글의 탈고를 돕던 남편은 끝내 그녀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2009년 4월 7일.

그날은 그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남자”가 함께 주어진 날이었다. 추악한 남자는 그녀의 모든 삶과 멘탈을 붕괴시켜나갔지만 사건 이후 아내의 아들과 함께 달려온 예비 남편은 따뜻하게 그녀를 감싸안았다. 보통 성폭력 사건 이후 배우자와 이별을 하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이제 우리는 결혼 못해요”라는 그녀의 속삭임을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결혼해야 할 때”라고 응수하며 막아버린 남자. 그녀는 지금 그 남자와 살고 있다. 재판 중간에 엄마에게 다가서던 범죄자를 물러서게 해달라고 나선 듬직한 아들과 함께.

 

 

또한 90세가 넘은 시할머니는 그녀의 소식을 듣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여자에게는-.”이라는 말로 위로했다고 하니. 비단 서양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들의 사람을 대하는 인격이 고매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녀는 가해자가 아니었으므로.

자신을 희생자라 부르는 것을 멈추어달라고 소신있게 발언한 그녀는 스스로가 피해자이긴하지만 생존자라고 표현했다. 피해자가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은 그녀에게도 주어졌다. 결코 다르지 않았다. 사건이 던져준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깊이 삶 속을 파고들어 남편과 아들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만들었지만 이 가족은 사랑으로 잘 극복해내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책을 출판할 결심을 할 수 있었으리라.

 

 

여성이라면 이런 사건을 겪고 담담할 수 없다. [룸]에서는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독자는 이해할 수 있는 성폭행을 당해온 엄마의 자살미수 사건이 있었고, [어두운 기억 속으로]에서는 끊임없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던 젊은 여성의 삶이 보여졌다. 상처받은 사람의 상처는 머릿 속으로 파고들어 순간순간 그날의 공포를 되새김질 시켜버리기 때문이다.

 

 

가정파탄범,아동성폭행범,부녀자 강간범,여성 성폭행범 들에 대한 처벌수위가 더 높아질 수는 없는 것일까. 그들이 재범,삼범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죄책감을 갖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저 걸린 사람이 재수없는 사람이 되는 현실이 사람으로하여금 무기력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 같다.

 

 

독일에서 일어난 실화는 비단 그들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현재 전세계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직업이 심리치료사여서 관련 공부가 탄탄히 되어 있는 중년의 여성조차도 자신의 삶에 예기치 못한 액운이 흘러들었을 때엔 삶의 손을 놓치고마는데 일반 여성들의 트라우마는 얼마나 크고 깊을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아이들과 여성들이 잘 보호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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