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들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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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는 작가다. 그는 재혼남이며 여배우의 아버지이고 두 귀여운 손녀의 할아버지다. 여기까지만 보면 꽤나 안정적이고 행복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육십대 남자에 대한 부러움이 일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쁜 것들]을 읽는 순간 그 생각은 봄날 커튼 걷듯 순식간에 걷어질 것이다.

 

첫번째 결혼에서 그는 아내와 큰 딸을 잃었다. 엄마와 꼭 붙어 다니던 엄마바라기였던 큰 딸 올가는 엄마와 함께 불타죽었다. 그것도 제 아버지 앞에서. 그 충격으로 그는 더이상 글을 쓸수도, 삶을 살아갈 힘도 잃어버렸다. 용서받을 시간이 앞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용서는 언제나 내일로 미뤄지고 있었는데 아내가 죽고만 것이다. 잘나가는 출판사 여사장과 하룻밤을 보낸 것을 아내가 눈치채 버렸을때도 그는 미안한 마음 이면에 "어쩌라고~"라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를 거스르고서는 출판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에 그녀와 자버렸다고 자기자신에게조차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하지만 그와 작은 딸이 잠시 차에서 내린 사이 아내와 또 다른 딸이 사고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불타는 것을 보며 그는 충격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딸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부터 학교에 술을 가지고와 마실만큼 제멋대로였던 딸이지만 이후 갈팡질팡하며 위로는 커녕 자기자신조차도 중심을 잡지 못하는 아버지가 급기야 여자까지 집으로 끌어들였을 때 그녀는 폭발해버렸다. 결혼을 하고나서,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도 엉망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도 한 몫했을 것이다. 가장 위로받아야할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내팽개쳐진 사춘기 소녀가 그녀의 마음 어딘가에서 성장하지 못한 채 함께 살아가고 있었을테니까.

 

그래서였을까. 전세계에 자신의 거짓실종 사건을 뿌려놓은 채 잠적해 버렸다. 이에 프랑시스는 딸을 찾기 위해 이웃의 한 친구를 탐정으로 고용하고 그녀의 아들은 아내를 감시하는 목적으로 고용했다. 글도, 남자로서의 삶도 함께 멈추어버린 자신과 달리 재혼한 아내는 여전히 아름답고 잘나간다. 경제권도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나 바쁜 그녀가 만나고 있는 남자는 누구일까.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린 중년의 사내는 결국 그녀를 새파랗게 어린 녀석에게 빼앗겨 버리고 비통에 잠긴다. 그 역시 자신이 저지른 일이므로.

 

프랑시스. 작가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이 남자는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첫번째 아내의 죽음부터? 딸과의 관계개선을 하지 못했던 시점부터? 두번째 아내를 의심하던 순간부터? 어쨌든 그가 점점 잃어버리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그로 인해 늙음이란 이토록 허무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기준으로보면 자신의 주변은 모두 나쁜 것들이다. 하지만 그 나쁜 것들의 기준으로 보면 가장 나쁜 사람은 언제나 프랑시스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그는 그토록 외로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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