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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의 정원
리앙 지음, 김양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타이완에서 큰 정원으로 손꼽히는 함원은 주씨 집안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재산이다. 중국식 정원이었으나 아버지는 대륙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타이완 토종 나무들을 심었다. 또한 딸에게는 타이완의 역사를 알려주고 왜 그녀가 청일 전쟁 말년에 태어나...라는 문장으로 쓴 작문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역사를 풀어나가며 집어내려준다. 그런 아버지지만 주잉홍을 일본식 이름인 아야코라고 부르며 일본식 발음으로 아버지를 호칭하는 딸의 태도도 그냥 내버려두는 이중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본보다 국민당에 대한 거부감이 더 심했던 아버지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원의 한 구석 침류각에서 문을 잠그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혼자인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는 듯 했으나 신식 카메라를 함원에 설치할만큼 세상물정에 밝은 사람이었고 벤츠 자동차를 좋아할만큼 서구적인 것에도 호감을 가진 지식인이었다. 대대로 물려진 여유로움을 마음껏 즐기다 간 아버지와 달리 딸인 주잉홍은 중국식 교육과 유학시절 익힌 교육 사이의 여성으로 자라났다. 어릴때부터 외국으로 건너가 완전히 외국 사람의 그것을 갖고 살게 된 두 오빠들과 달리 주잉홍은 보수적이면서도 개방적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딜을 행할 줄 알면서도 망설임이 있고 기다림을 소중히 여기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녀의 아버지처럼.
이미 두 아내와 다섯 아이가 있는 부동산 재벌 린시겅과 연애 줄다리기를 하면서도 다른 남자를 러브호텔에서 만나 섹스 파트너로 두는 대담함도 보이는가하면 린시겅에 대한 순애보적인 사랑 역시 가슴에 함께 품고 있기도 했다. 애초에 다른 서평과 보도자료를 통해 "아버지와 딸의 타락"이라는 문구가 너무나 자극적으로 다가왔었는데 이들이 함께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방법으로 인생의 퇴폐와 향락을 즐기는 그 과정을 타락이라는 문구로 묶어놓은 것임을 글을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을 죽이다]나 [눈에 보이는 귀신],[자전소설]등을 써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작가 리앙의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처음이지만 이제껏 타이완 소설이 보여준 70년대 풍의 달콤한 연애 소설이 아닌 현대문학의 정수를 읽게 된 것 같아 읽고나서도 기분이 산뜻해지며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일생을 보낸 아버지를 보며 자라난 딸이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의 쟁취 이후 함원으로 돌아와 그 시절의 함원을 복원하고 기증하기에 이르르면서 역사는 그렇게 흘러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