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뿔 (체험판)
임은정 / 문화구창작동 / 2012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영화[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전국민은 "꼭 잡고 싶었다"는 열망을 가슴에 품었다. 그 울분과 안타까움이 겹쳐져 영화는 그리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이 포스터에 적은 문구처럼 우리는 범인을 꼭 잡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 시골 경찰서의 환경은 너무나 주먹구구식이었고 엉망이었다. 찍어서 아무도 범인으로 만들기에 급급했고 증거를 분석하기보다는 우겨세워서 범인으로 몰아가기에 바빴다. 어쨌든 빨리 누군가라도 잡아넣어서 민생치안을 안정시켰다는 국민적인 인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끝나버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여기 그 영화 속에서처럼 주먹구구식 수사의 희생물로 젊은 날을 바쳐야했던 한 남자의 삶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 단 한번 밖에 살지 못한다는데 이 남자의 인생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것이며 또 누가 보상한들 만족스러울까 싶어질만큼 그의 인생을 보고있자니 눈물부터 차오른다.

 

목회자가 되고자 꿈꿨던 한 젊은이는 사상범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 모든 꿈들을 접고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만화방 주인으로 살아가지만 그조차 삶이 넉넉치 못해 아내와의 사이는 틀어질대로 틀어져 있었다. 마흔을 바라볼 나이에 만화방에 들락거리던 10대 후반의 어린 여자아이의 흠모대상이 되지만 그에겐 바람조차 사치인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놈의 술은 그 어린 아이를 어린 연인으로 만들어 버렸고 어쩔 수 없이 시작된 관계지만 그는 책임감을 느껴야했다.

 

집에는 아내가 만화방의 단칸방에는 애인이 있는 생활. 코딱지만한 동네에서 소문이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파출소 소장의 딸내미가 마을에서 유일하게 TV가 있던 몇 안되던 장소인 만화방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다가 성폭행을 당한채 목졸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마을 전체가 발칵 뒤집힐 일이었다. 범인 색출은 어렵고 증거는 충분하지 않고 누군가는 잡아 넣어야하고....이 시절에 불륜남이자 사상범이었던 그는 그들의 좋은 먹잇감이었고 결국 고문과 조작의 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의 옥살이가 시작되었다. 면죄부를 얻기까지 39년. 그 억울한 세월을 뒤집고 무죄를 증명하기까지 세상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는 어느새 78세의 노인이 되어 버렸다. 목회자가 되어 남은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의 소망은 단 하나 억울함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죄를 지은 자들이 죄사함을 받는 것이 면죄부인데 그에겐 죄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도리어 면죄부가 되어버린 이상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평범하게 살아온 내게 그것이 가장 충격이었으며 한 사람의 망가진 인생을 국가에서조차 보상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마음 불편해지는 진실이었다.

 

삶은 왜 이렇게 잔인한 것일까. 어딘가에서는 그 진범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세월동안 또 다른 범죄를 지으면서 살았을 수도 있고 그 이후에는 멀쩡한 인격의 사람인척 하고 어느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자신의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남자의 인생을 몽땅 지옥으로 만들어 놓고서도.

 

이 책은 범인이 아닌 정원섭씨가 그 억울함을 풀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가장 궁금했던 한 가지는 빠져 있다. 그래서 범인은 누구? 인가 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공소시효는 지나버렸겠지만 그때 그 범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